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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안 가보고 음식점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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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프랑스의 미슐랭 그룹이 만드는 최고 권위의 식당 안내서 '르 기드 루즈'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르 기드 루즈'는 매년 프랑스 전체 음식점의 요리와 서비스 수준을 평가해 등급별로 '별'을 달아주는 가이드북. 해마다 60만부 이상이 판매되고 별 하나가 25%의 매출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다. 1백여년 전 '기드 미슐랭'이란 이름으로 출판되기 시작된 이 책은 200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런 '공신력'을 바탕으로 1백년 이상 명성을 쌓아왔지만 직원 한 사람이 "실제 평가시스템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며 폭탄선언을 했다.

사건은 16년 동안 암행 평가원으로 일해온 파스칼 레미가 자신이 평가해 온 내용을 출판하고 싶다며 회사에 제안한 데서 비롯됐다. "일하면서 겪은 갖가지 일화를 책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평가방식은 완전한 비밀'이란 철칙을 고집해 오던 미슐랭 그룹은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출판을 포기하면 승진시켜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레미는 그러나 이를 거부했고 회사는 즉시 레미를 해고했다.

그러자 레미는 그동안 간직해온 '비밀'들을 지난 12일 세상에 폭로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르 기드 루즈'에 좋은 평가를 받은 식당 중 평가원들이 1년에 한번도 들르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평가원이 10명도 채 안돼 일일이 식당을 찾아볼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 소식을 접한 식당 주인 알랭 뒤카스는 "나는 식당 세곳에서 모두 7개의 별을 받았는데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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