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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라 ‘인사동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호 02면

1980년대 초반, 인사동의 카페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과 함께한 박이엽(오른쪽).

박이엽(1936~2002) 선생의 존함을 알게 된 건 그가 번역한 『나의 서양미술 순례』(서경식 지음, 창비 펴냄) 덕이었습니다. 지금도 미술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이가 있으면 두말없이 추천하는 책입니다.

순화동 편지

손에 잡자마자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단숨에 독파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가슴 여기저기가 딱딱해져서 여러 번 호흡을 골랐으며, 나중에는 누런 책갈피마다 이런저런 감회가 딱지처럼 내려앉아 멍하니 다른 생각으로 건너가기 일쑤였죠. 원저가 좋기도 했지만 그 연작 에세이를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숨쉬는 얘기로 만든 번역자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번역이 예술인 경지랄까요.

그 뒤 인사동에 나갔다가 누군가의 소개로 박이엽 선생과 인사를 나누게 됐을 때 살짝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이 라디오 프로그램 ‘아차부인 재치부인’을 집필한 방송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저도 즐겨 들었는데요” 놀랐더니 “그걸 들을 만한 연배인가요”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4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급작스러운 소식을 듣기까지 인사동 골목골목에서 때때로 뵈었지만 참 말씀이 없는 분이라 늘 눈인사만 나누고 말았지요. 신경림 시인이 썼듯 선생은 “조용한 사람” “입이 무거운 사람” “남의 흠을 들추지 않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고인이 남긴 유고를 모아 엮은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창비 펴냄)이 출간된 지난주, 인사동 사람들 몇이 사발통문을 하며 잠시 추억에 젖었습니다. 그리운 이름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죠. 시인 천상병, 철학자 민병산, 한학자 이구영, 시인 신동문….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이분들이 자주 머물던 찻집 ‘수희재’의 주인장은 “그때가 (진짜) 인사동이죠” 한마디 하더군요. 몇 시간이고 별말 없이 앉아 있던 민병산·박이엽 짝의 사귐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는군요.여럿이 어울려 얼키설키 살갑게 살던 그 무렵을 ‘인사동 시대’라 불렀다니 이봉구 선생의 ‘명동 시대’에 버금가는 한국 문화의 호시절이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박이엽 선생이 평생 반골(反骨)이자 야인(野人)으로 살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유고를 읽으니 그분 생각의 반도 알지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친구 채현국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나저러나 건강 괜찮으냐? 세상이야 미쳐 날뛰든 말든 몸이나 망치진 말아라.”

“괜찮다, 다 괜찮다” 하시던 천상병 시인, “부귀는 짐스러운 것이다. 명예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스운 것이다” 하셨던 민병산 선생, 그 위에 박이엽 선생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이제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하네. 그곳도 필시 아름다울 테지?” ‘저절로 아름다운 것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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