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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는 MB ‘돈’ 昌 ‘스피드’ 鄭 ‘현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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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05면

일러스트= 강일구

사달은 ‘숫자’에서 났다.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비전위와 당 정책위원회, 외부 교수자문단이 고치고 다듬은 이 후보의 대선 정책공약. 개략적인 보고를 마친 터여서 정책 담당자들은 선포식 날 배포할 정책공약집을 인쇄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며 막바지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발표를 하루 앞둔 25일 오후 갑자기 이 후보의 보고 지시가 떨어졌다.

대선과 POLICY-MAKING

공약집과 발표 자료를 보던 이 후보의 인상이 굳어졌다. 자료 제작 전 열린 비전위와 당 정책위 회의에서 “민감한 수치들은 빼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가 나와 이를 반영한 것이 화근이었다. ‘2% 부족한’ 공약집을 이 후보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인쇄 작업을 중단시키고 내용을 수정해 책자를 다시 만드느라 정책 참모들은 밤새 진땀을 흘렸다. 새로 나온 공약집엔 ‘신혼부부 주택 12만 채’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 명’ 같은 숫자들이 빼곡히 찼다.

이 후보의 공약 채택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특히 정책에 들어가는 ‘돈’이 해결되지 않으면 통과가 불가능하다. 국가 예산을 쓰자고 올렸다가는 “나랏돈으로 하는 일 누가 못 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다. 지난 추석 땐 ‘명절 기간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공약을 준비해 톨게이트에서 후보가 발표하는 기획안이 올라왔지만 돈 문제에 걸려 퇴짜를 맞았다. 일자리 공약은 1년 이상 보완작업을 거쳤으며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이 후보 사인을 받지 못한 정책이 있다. 곽승준(고려대 교수) 정책기획팀장은 “특히 국민 입장에서 정리가 잘 안 돼 있을 땐 ‘누가 교수 아니랄까봐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느냐’는 질책을 듣곤 한다”고 말했다. 고성학 비전위 기획총괄팀장은 “독창성이 없는 정책은 거의 채택이 안 된다”고 설명한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정책 파트는 지금 ‘불난 호떡집’이다. 워낙 출발이 늦었다.

이 후보는 출마를 선언한 7일 밤에야 윤홍선 정책팀장을 집으로 불러 “정책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윤 팀장은 이 후보가 총리 시절 정무수석으로 일했으며 이명박 후보의 핵심 측근인 정두언 의원의 같은 부서 상사로 5년 넘게 일한 인연도 있다.

윤 팀장이 허겁지겁 교수, 전직 관료 등을 불러모아 북핵·이라크 문제 등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 약 10일. 보고는 이 후보가 지역 활동에 나선 광주의 한 모텔에서 이뤄졌다. 윤 팀장은 “현안에 대한 다른 후보들의 입장은 명확하게 보도되는데 우리는 ‘…’으로 언론에 나와 속이 탔다”며 “오랜 국정경험과 야당 생활을 해본 후보가 이미 생각을 잘 정돈해둔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도 짧은 시간에 정리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12개의 공약이 발표된 건 지난달 22일. 나흘 뒤 20개로 공약이 늘었다. 하루에 2개씩 만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캠프 관계자는 “대개 1∼2일에 끝내야 하며 5일을 넘길 수 없다”고 절박함을 표했다. 그러다 보니 충돌도 생긴다.

유석춘(연세대 교수) 정무특보는 “정책을 만들고 후보 입장을 정하면서 언론에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니 정신이 없다”며 “하루에도 몇 건씩 정책을 두고 논쟁을 하다 보니 때론 멱살잡이 직전 분위기까지 연출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중요한 결정은 꼭 후보가 판단을 한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실시’ 공약을 두고서는 연방제라는 용어 때문에 우려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북한의)고려연방제와 다르다는 걸 잘 설명해서 오해받지 않도록 하면 된다”는 선에서 교통정리가 됐다. 싱가포르·핀란드 같은 강소국(强小國) 형태의 국가 개조를 생각해온 이 후보 소신이 워낙 확고했다. 전원책 정무특보는 “이 후보가 이미 마음속에 마스터 플랜을 그려놨더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기자 출신답게 ‘현장 취재’로 결론을 낸다. 논란이 가장 치열했던 것은 교육 정책. 대입 수능을 폐지하는 개혁안과 대학 자율성을 강화하는 혁신안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자 정 후보는 지난달 2일 오후 10시쯤 일산의 학원가를 찾아가 학생들을 만났다. 정 후보가 “학원 다니는 게 어떠냐”고 묻자 학생들은 “재미있다”고 답했다. 뜻밖으로 여긴 정 후보가 이유를 묻자 아이들은 “학원에 와야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정 후보는 수능 폐지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정 후보는 정책 제안도 ‘기사 제보’와 ‘취재’ 형식을 통해 받는다. 내세상닷컴(www.happy1219.com) 사이트를 통해 시민들의 제안을 받은 뒤 실태 확인 등을 거쳐 공약으로 다듬는 방식이다. 심화섭 가족행복위원회 정책지원단장은 “초등학생 준비물을 학교에서 제공하고 신용카드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결제하는 방안 등이 이를 통해 제보 받은 정책”이라고 공개했다. 또 양로원 같은 데를 직접 찾아가 ‘정책거리’를 발굴하는 ‘행복배달부’도 운영 중이다. 행복배달부 매뉴얼에는 ‘취재한 정책 민원 내세상닷컴에 올리기’라는 근무지침이 적혀 있다.

그러나 정 후보의 현장 취재 방식은 참모들에게 어려운 숙제를 남기곤 한다. 지난해 독일을 다녀와선 “중소기업의 상속을 장려하는 독일의 제도를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 금융권에 있는 지인들과 만나 적어온 메모지를 꺼내며 “시중의 여윳돈을 중소기업 주식에 투자시키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주문도 했다.

김동렬 정책상황실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정책안이 만들어지면 현장 사람들을 만나 ‘확인 사살’을 한 뒤 공약으로 확정한다”고 전했다.

캠프마다 쟁쟁한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지만 결국 공약엔 후보의 색깔이 담긴다. 이명박 후보는 IT 관련 정책 보고를 받던 중 “여기에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을 사례로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단순한 버스 노선 개편이 아니라 IT를 접목했기에 가능했던 혁신이라는, 이 후보의 자부심이 표출된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아토피 철저 규명’ 공약을 내놓으며 “나도 어렸을 때 두드러기를 앓았는데 밤에 위경련같이 와 잠을 못 잤다”는 경험을 소개했다. 캠프 관계자는 “이 후보가 (유치원·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들을 보면서 이 공약의 필요성을 더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인 발언 파문’으로 곤욕을 치렀던 정 후보는 노인 정책에 관한 한 마음이 후하다. 틀니뿐 아니라 보청기·돋보기까지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공약, 노인들을 위한 전용방송국 개국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행복공약 1호’로 선정한 영·유아 보육시설 설치 공약에도 “노인들을 아이 돌보미로 고용한다”는 조항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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