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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금식 동참했던 착한 그가 …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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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10면

1. 고(故) 김부중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지난 10월 8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직업훈련원에서 자동차 회로도를 짚어가며 교사들을 연수시키고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영웅들의 도시다. 처음 이곳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 그의 휘하 장군이었다가 이집트 왕에 오른 프톨레마이오스 1세, 로마의 정복자 카이사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클레오파트라 여왕 등이 야망과 사랑을 불살랐던 곳이다.

박상주가 만난 사람-알렉산드리아에서 기술 전수한 김부중씨

특히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상대로 나눴던 비련의 무대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연인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에서 정적(政敵) 옥타비아누스와 일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하고 만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는 코브라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김으로써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신도 아니면서도 금식하는 괴짜
지난 10월 8일, 알렉산드리아 카이트베이 요새 인근의 피자헛 2층. 넓은 창으로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클레오파트라는 여기 어디쯤에서 새까맣게 밀려오는 옥타비아누스의 함대를 망연자실 바라봤을 것이다.

2. 알렉산드리아 거리에 서 있는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동상. 3. 알렉산드리아 카이트베이 요새 전경. 4. 알렉산드리아 직업훈련원에서 한 교사가 자동차 엔진의 구조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곳에서 김부중(47)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개도국기술이전연구소 연구위원을 만났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후원으로 설립된 알렉산드리아 직업훈련원에서 교사 연수 및 기술 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자동차 전문가다. 1979년 전국기능대회 금메달, 81년 미국 애틀랜타 국제기능올림픽 4위를 차지한 실력파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를 빛나게 한 건 그의 ‘숨은 선행’이다. 올해 대한민국 봉사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였다.

이슬람 신도가 아니면서도 라마단 한 달 동안 금식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부중씨가 바로 그런 괴짜였다. 라마단이 시작된 9월 13일 이후 해 뜰 무렵부터 해 질 때까지 일절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이슬람을 믿지도 않으면서 도대체 왜 라마단을 지키는 걸까.

“함께 지내는 이집트 동료들한테 미안하잖아요. 다들 굶고 있는데 혼자 음식을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라마단은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의 아픔을 함께 느껴 보라는 게 원래의 취지라고 들었습니다. 동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세상 으뜸 덕목은 ‘배려’
타인에 대한 배려. 부중씨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으뜸 덕목으로 ‘배려’를 꼽았다. 가급적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하고, 기분 상하지 않도록 하고, 숨겨진 아픔을 헤아리고, 작은 거라도 함께 나누고….

그는 봉사란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학교 동료나 동네사람 경조사마다 빠짐없이 쫓아다닌다. 그런 자리에선 어김없이 그들의 이런저런 딱한 사연을 듣게 되고, 그럴 때마다 부중씨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어부가 나일강에서 투망질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강변을 지나는 전선에 감전됐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 갔더니 아직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어요. 당장 먹고사는 게 문제더군요. 조그만 장사라도 시작할 수 있도록 미망인에게 1000 이집트 파운드(약 16만원)를 건네줬습니다.”

그의 이런 ‘선행 오지랖’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 5월엔 직업훈련원 교사의 다섯 살 난 딸이 다운증후군(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어린이의 선천성 질환)으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수술비용 2000 이집트 파운드(약 32만원)를 내놨다.

이집트에선 교사 1년 연봉에 해당되는 큰 액수였다. 하루 세 끼를 해결하지 못하는 동네 어부가 자신의 배 한 척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작은 나룻배 한 척을 사준 적도 있었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끙끙 앓기만 하는 학교 교사들이나 동네 주민들에게 약을 사다 나르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한국의 지인들을 통해 거둔 헌 옷 200벌을 가져다가 이웃에 나눠주기도 했다.

“저도 한때 어려운 시절을 겪어봤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이 어려워 야간 고등학교를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시절 1년 동안 공사장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날랐던 적도 있습니다.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게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건지 모릅니다.”

빈민과 함께한 큰 마음
부중씨의 뺨은 항상 빨갛게 부어 있다. 2005년 12월 이집트에 온 이후 생긴 피부 트러블이라고 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서로 얼굴을 비비며 인사를 합니다. 처음엔 참 어색하더군요. 그런데 자꾸 그렇게 인사를 하다 보니 훨씬 정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 턱에 수염이 많아요. 하루에도 여러 번씩 그런 인사를 주고받다 보니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그가 겪었던 어려움은 이뿐이 아니었다. 지난 1년 만에 체중이 무려 15㎏이나 빠졌다고 했다. 창자가 뒤틀리는 복통을 10여 차례 겪었다. 그가 자주 들르던 동네는 모하람베라는 곳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표적인 빈민가 중 하나였다. 친해지다 보니 그곳 주민들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위생관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음식을 먹다 보니 탈이 났던 듯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다. 부중씨는 ‘선행 오지랖’을 글로벌 규모로 넓히고 싶다는 꿈을 털어놨다.
“한국은 자동차 선진국입니다. 가난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선진 자동차 기술을 가르치면서 살고 싶습니다. 가진 거 나눠주는 게 봉사라면 제가 가진 건 자동차 기술뿐입니다.”

어이없이 스러진 봉사의 꿈
그러나 부중씨는 이런 아름다운 꿈을 이룰 수 없게 됐다.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KOICA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믿기 어려운 비보를 전하고 있었다. 11월 18일 부중씨가 운동을 하던 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날벼락 같은 전갈이었다. 선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남은 인생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겠다는 그였다. 귀국했을 때 어머님에게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 몸을 챙겨야겠다고 말했던 그였다.

하느님은 결국 가장 가까이 두고 싶은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모양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거쳐간 ‘작은 영웅’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상주씨는 18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 얘기 나누는 걸 즐긴 언론인으로 지금은 세계를 방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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