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요르단의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호 26면

1. 페트라 최고의 장관인 보고. 넓은 뜰에 관광객이 북적인다.

“드디어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지막 현장이군. 가슴이 설레고 기대가 커.” 경기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조항태(71)씨는 요르단 남부 페트라 협곡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은퇴 후 10년째 부인과 세상 유람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7일에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발표됐잖아. 그런데 이곳 페트라만 빼놓고는 다 가본 곳이더라고. 그때부터 준비해서 드디어 오늘 온 거야.”

바위산 깎아 빚은 장밋빛 도시

‘세계 7대 불가사의’란 무엇인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후 그리스인의 관광 대상이 되었던 7개의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 외에는 남아있지 않아 현대의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스위스의 영화제작자 베른하르트 베버는 인터넷과 전화투표를 통해 올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해 발표했다.

그 전에도 중국의 만리장성까지 포함하는 현대 7대 불가사의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는 새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지구촌 다수의 의견을 물어 새로운 리스트를 발표한 것이다. 페트라는 중국의 만리장성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다섯 곳은 멕시코의 치첸이차, 페루의 마추픽추,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로마의 콜로세움, 인도의 타지마할이다. 피라미드가 빠지고 예수상이 포함되는 등 문제점이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결론이 났다.

2. 고대 나바테안의 주거지에서 본 극장. 한 덩어리의 돌을 쪼아 만들었다. 3. 켜켜이 쌓인 사암. 붉은 빛깔이 황홀하다. 4. 다양한 색상의 모래를 유리병에 넣어 만든 기념품.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

한 덩어리의 돌로 만든 기적
거대한 바위틈으로 좁은 길이 나 있다. 파란 하늘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엄청난 부피와 변화무쌍한 바위산이 왜소한 인간을 압도한다. 혼자 걷는다면 두려움조차 느낄 장관이다. 협곡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붉은 사암(砂巖)을 황홀하게 물들인다. 어떤 시인은 페트라를 ‘장밋빛 붉은 도시(Rose-Red City)’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협곡 출구를 바라보고 있다. 눈에 익지만 신비한 모습, 페트라 최고의 작품인 ‘보고(寶庫)’가 갈라진 바위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보고는 파라오의 보물이 보관돼 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건물을 지을 때 석재를 다듬어 하나씩 쌓아 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영감있는 디자인일 뿐이다. 하지만 한 덩어리의 돌을 쪼아 건축물을 빚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국사 다보탑을 단 하나의 바위를 쪼아 만드는 일이 가능했겠는가? 페트라의 보고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더구나 재료는 잘 부서지는 모래돌이다. 단 한 번의 실수도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불가사의한’ 기술의 결과인 것이다.

조각은 2층부터 시작했다. 여섯 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선 그리스 양식의 신전 파사드를 만들고 그 사이에는 신의 형상을 양각으로 새겼다. 1층에도 역시 여섯 개의 기둥을 세우고 중앙에는 출입구를 냈다. 전체 높이는 25m.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높고 화려한 신전 파사드가 동방의 협곡에 탄생했다. 그리스 신전 양식과 한 가지 다른 점은 2층 박공의 중간 부분을 잘라내 원형으로 만든 것인데 여행자에게는 동방국가의 왕관처럼 보인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건축물이 보고에서 오른쪽으로 10분쯤 걸어간 곳에 또 있다. 얼핏 보면 보고에 비해 밋밋하지만 그 역시 단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바로 극장의 관중석이다. 거대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환경 덕분이겠지만 도시의 옛 주인들은 단 하나의 돌로 건물을 빚어내는 일에 익숙했다. 그들은 바위산을 우직하고 끈질기게 깎아내 30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원형 스탠드를 만들었다. 구조적 안정성은 인류 역사상 최고일 것이다.

원래의 주민들은 이 장소에서 왕의 장례식이나 종교의식 등을 치렀다고 하는데 2세기에 도시를 점령한 로마인은 스탠드 정면에 로마식 무대건물을 지어 연극용 극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쌓아 올린’ 장식물은 지진으로 다 무너져 내려 이제 원형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위대한 작품으로 가득한 도시 페트라를 건설한 것은 나바테안(Nabataean)이다. 나바테안! 생소한 민족이다. 이들은 원래 서부 아라비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민족으로 기원전 6세기쯤 이 지역에 정착했다. 그들은 요르단을 남북으로 잇는 ‘왕의 대로’를 이용해 이 지역의 상권과 무역을 장악했으며 페트라를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10분의 1
서기 106년 로마황제 트라야누스는 페트라를 점령해 아라비아 속주의 수도로 만들었고 후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곳을 방문해 도시 이름을 ‘하드리안의 페트라’로 바꿔 부르게 했다. 로마제국 아래서 도시는 번영했다. 하지만 로마와 동방을 잇는 다른 교역로가 개척되면서 장밋빛 도시 페트라는 서서히 쇠퇴해 갔고 수백 년 뒤의 큰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버렸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잊혀졌던 도시는 1812년 스위스의 젊은 탐험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었다. 중동 지역을 여행하던 그는 이곳에 엄청난 고대 유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페트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는 여행기를 출판해 이 신비한 도시를 세상에 알렸고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발굴이 이루어져 이제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7대 불가사의로까지 선정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고대 도시의 10분의 1에 불과하고 당일치기 관광객은 발굴된 것의 10분의 1도 보지 못한다. 그만큼 페트라는 신비하면서도 거대한 도시였다.

서둘러 협곡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조항태씨는 아쉬운 듯 몇 번이나 뒤돌아본다. 여유롭게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데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없다.

“선생님, 7대 불가사의를 다 보셨는데 어떤 곳이 가장 좋았나요?”

잠시 생각한 그는 “타지마할”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건축도 대단하지만 사람 이야기가 있잖아. 애잔한 사랑이 가슴 아프지.”

“그러면 페트라는 어떠셨어요?”

“아주 좋았어. 뭐라고 할까, …기이(奇異)하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아.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너무나 기이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