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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오염을벗긴다>10.고령.합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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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은빛 모래펄이 검은 기름띠로 뒤덮이고 황토빛 농경지가 잿빛으로 변했다.토양오염 때문이다.
낙동강과 금호강의 오염된 물로 농사를 짓다보니 농경지에 각종오염물질이 스며들어 토양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염된 토양에서 생산한 각종 농산물이 오염을 일으킨 사람들의밥상에 오르는 부메랑현상이 새삼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어쩌면「뿌린대로 거둔다」는 격언대로인지도 모른다.
산업폐수와 축산폐수등 각종 오.폐수로 오염돼 농사를 지을 수없는 경남.북 낙동강변의 농경지만도 모두 7백52㏊.이중 금호강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경북달성군의 농경지가 37.4%(2백81㏊)나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금호강의 맹독수와 침전물에 치명상을 입고 오염중증에 시달리며 유수력(流水力)마저 잃어가고 있는 고령교 아래는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의 연평균치가 6.7PPM으로 3급수에도 훨씬 못미치는 바람에 상수원수는 커녕 농업용 수로도사용할 수 없다.기름진 고령평야에서 생산되던 그 유명한 「고령쌀」의 명성은 이미 옛 얘기가 돼버렸다.
고령읍내 지산(池山)자락의 가야고분군을 끼고 주변에 벽송정(碧松亭).도연재(道淵齋).만남재(萬南齋).반룡사(盤龍寺)등 문화유적이 산재한 안림천은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야산의 맑은 물을 타고 은어떼가 몰려와 인근 주민들이 여■ 한철 은어잡이에 재미붙이며 산자수명(山紫水明)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악취 풍기는 시궁창으로 변했다.
안림천 상류 고령군쌍림면고곡동에 7만7천평규모의 쌍림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공단폐수로 썩기 시작한 하천수가 새까만 침전물로뒤덮여 은어떼는 커녕 붕어.피라미도 씨가 말라버린 가운데 이 물 역시 회천을 거쳐 낙동강 본류로 유입되고 있 는 것이다.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88고속도로를 타고 낙동강 물길 따라달성군논공면위천리를 지나자 뿌연 거품떼가 부글거리며 온갖 침전물이 꾸역꾸역 낙동강으로 쏠려들고 있는 게 아닌가.
달성공단의 2백53개 입주업체들이 사천교밑 6개 수문을 통해하루 1만4천t의 희뿌연 부유물질과 검붉은 산업폐수를 쏟아내고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불과 1㎞ 상류에 위치한 달성군논공취수장에서는 이같은 물을 하루 1만5천t씩 취수,2천3백여가구 주민들에게 수돗물로 공급하다 지난 1월3일부터 20여일간 악취소동을일으켜 수돗물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빚기도 했 다.
환경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서는등 또 한차례 야단법석을 떨었으나벤젠.톨루엔.분뇨등에 오염됐을 것이라는 추정만 남긴채 아직도 정확한 오염원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수돗물 악취소동을 일으킨 논공취수장에서 S자형으로 3㎞쯤 굽어진 고령군개진면생리 낙동강 하류엔 오염비상도 아랑곳없이 아예물길까지 가로막고 모래채취가 한창이다.
준설선이 강바닥을 샅샅이 훑어 파낸 모래를 2백m의 하폭(河幅)에 파이프 라인까지 설치해 뿜어내는 광경은 한마디로 자연환경 파괴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골재채취로 인해 곳곳에 모래톱이 생겨나 물길이 막히자 적조현상까지 발생,적황색의 거품떼가 물을 뒤덮고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던 강물은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하류에서 상류로 역류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때문에 경남창녕군 이방들을 적셔주던 낙동강의 농업용수는 흑갈색으로 변해 악취를 풍기며 옥야리 농수로로 끊임없이 유입되고있다. 주민 박연분(朴蓮粉.54.여)씨는『10여년전만 해도 낙동강물로 밥해먹고 빨래하고 목욕까지 했으나 이제 강변 근처에만가도 악취가 난다』며 『고무호스를 4㎞나 대고 썩은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짓자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덕유산줄기인 대덕산에서 발원한 또하나의 낙동강 수계는 64㎞의 때묻지 않은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다 거창읍내 위천을 거쳐 일단 흐름을 멈추게 된다.합천댐-.
정부가 83~88년 5년간에 걸쳐 물이 맑기로 정평이 나 있는 황강 본류(1백11㎞)를 막아 축조한 합천댐은 높이 96m,길이 4백72m의 콘크리트 중력식으로 시설용량은 7억9천만t.2개의 수력발전시설에서 연간 2억3천4백만㎾의 전력을 생산,산업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물도 산간곡지(山間谷地)에서 나던 옛물이 아니다. 합천댐 조성 이후 물길이 끊기면서 봉산이주단지.대병관광단지등 댐 주변의 위락시설에서 나오는 생활 오.폐수가 고스란히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합천댐관리사무소 총무과장 진중광(陳重光.42)씨는『댐의 주오염원이 생활하수와 낚시꾼들의 오물.쓰레기 투기로 지적되고 있으나 단속권이 없어 계도하는데 그치고 있다』며『깨끗한 수질보전을위해 상류지역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관리하는 일이 시급한데도 재산권 제한등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유역 주민들의 반발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2급수질을 유지하고 있던 댐물이 방류되면서 불과 14㎞ 떨어진 하류쪽에는 낙동강 본류의 자정력을 살려주던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주변에는 농공단지까지 들어서 산업폐수를 마구 흘려보내는데다 거창.합천등지의 생활하수가 하루 1 만2천여t씩위천을 통해 황강으로 흘러들어 오염부하량에 따라 3급수로 떨어지기 일쑤다.
게다가 국립공원 가야산 계곡에서 발원,황강 유지수로 톡톡히 한몫해오던 가야천변에도 농공단지가 들어서고 10여곳의 도자기공장이 난립한데다 축산폐수까지 늘어나 저수로 곳곳에서 썩은 물이악취를 풍기는 것도 황강오염의 주원인으로 지적되 고 있다.
우리나라 3대 법보종찰(法寶宗刹)의 하나인 해인사 경내에 단풍이 들 무렵 새빨간 그림자가 지고 우거진 송림 사이로 기암괴석에 부딪치며 흐르던 홍류동계곡의 물도 옛 정취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합천군이 82년 사업비 10억원을 들여 홍류동계곡 상류인 가야면치인리에 시설용량 3천t의 하수처리장을 건설했으나 당초 기본설계 잘못으로 정상가동이 안되는데다 연간 8억원의 시설유지비를 확보하지 못해 침전지에 돌이끼만 무성한채 12년 째방치돼고 있다.
합천군청덕면상적포리 속칭 삼정골은 낙동강 본류와 황강의 합류지점. 질식상태에 빠진 낙동강의 먹물이 느릿느릿 창녕군이방면을숨가쁘게 휘감아 돌 즈음 황강물이 휩쓸리면서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된다.
***“들에 가기 겁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두 강물이 뒤섞이면서 황강의 맑은 물은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리고 소용돌이치는 먹물을 미처 피하지 못한 잉어.붕어등 물고기떼가 강변 모래톱으로 뛰어오르며 숨가빠 팔딱거리기 일쑤다.
주민 이상렬(李相烈.37)씨는『황강에서 노닐던 물고기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갈 땐 으레 떼죽음 당하고,용케 살아난다 해도 등이 휘거나 지느러미.꼬리가 없는 기형 물고기로 변해버린다』며『논농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썩은 물을 끌어다 쓰지만 악취때문에 들판에 나가기조차 역겹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불과 4㎞ 거리인 적포나루터는 옛부터 이름난 뱃놀이낚시터.강변에서 뱃머리를 끌고 그물질하던 사공이며 어부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춰버렸고 잉어요리점.매운탕집은 아련한 추억속에 양식어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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