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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 캐나다 어촌 물류 허브 꿈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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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캐나다 밴쿠버 북쪽으로 약 770km. 비행기로 1시간 반을 날아가면 알래스카로 가는 길목의 항구도시 프린스루퍼트에 이른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구 1만3000명의 '마을급' 도시가 최근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하는 물류 도시로 발돋움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올해 9월 말 문을 연 프린스루퍼트항(港) 때문이다.

제1터미널에 이어 2012년 제2터미널이 완성되면 프린스루퍼트는 연간 500만 TEU(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하게 된다. 이는 연간 약 1200만 TEU를 처리하는 세계 5대 항만 부산항의 절반 규모다. 조그만 어촌 마을이 북미 화물을 도맡던 미국의 대규모 항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연어잡이로 생계 잇던 어촌=1990년대까지 프린스루퍼트는 어업과 임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알래스카와 가까워 수산자원이 풍부했고 세계적인 연어와 넙치 중심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미국과의 조업분쟁으로 어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생선처리 공장엔 불이 나고, 펄프 공장은 문을 닫았다. 도시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자 인구는 계속 줄어 1만 명에도 못 미치는 지경이 됐다.

이때 천혜의 자연조건이 도시를 살릴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자연제방으로 안으로 들어앉은 항구는 수심이 깊고 겨울에도 얼지 않았다. 또 북미 서부에서 동아시아와 가장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다. 미국 LA와 시애틀 등 북미 서부항만이 고질적인 정체를 겪고 있어 대안이 필요했다. 빽빽한 철도망까지 갖춰 아시아 시장과 북미를 연결하는 허브도시로서 승산이 보였다.

캐나다 연방정부와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정부가 각각 3000만 캐나다 달러(약 300억원)를 투자해 컨테이너 터미널을 만들었다. 캐나다 철도회사인 CN과 미국의 마허터미널사도 가세해 총 1억7000만 캐나다달러(약 1700억원)가 투입됐다. 한적한 어촌도시가 캐나다 정부가 야심 차게 시작한 '아시아-태평양 관문통로 프로젝트(APGCI)'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역발상'으로 물류 허브 발돋움=도시는 한산했다.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부두에서 중국 최대 해운업체인 코스코의 컨테이너선이 화물을 하역하고 있을 뿐 여느 항구도시 같은 분주함이나 북적거림은 찾을 수 없었다. 프린스루퍼트 항만공사의 돈 크러셀 사장은 "북미 항만의 최우선 과제는 적체 없이 운송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어업 외에 특별한 지역 산업이 없고 인구도 적은 것이 경쟁력이 된다"고 말했다. 시 정부는 2012년 프로젝트가 완성돼도 인구는 3만 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의회 관계자 역시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지금 모습 그대로를 차별화해 강소(强小) 도시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프린스루퍼트=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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