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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은 자(49)남은 밥을 먹고앉아 있는 길남의 옆에서 윤씨가 떠들고 있었다.
『남편은 두레박이고 마누라는 항아리 아닌가?세상살이가 다 그렇게 짝이 맞아 있는 거여.구멍이 있으면 넣을 막대기가 있는 거고.』 『그건 그렇다만 마누라가 항아리라니.자네 마누라가 통이 그렇게 큰가?』 『남자는 그저 벌고 여자는 그거 쌓아두는 거라 그말이다.』 밥을 우물거리며 떠들고 있던 김씨가 젓가락을든채 멍한 얼굴을 했다.
『가만 있어 봐.그러고 보니 엊그제가 내 귀빠진 날이었네.』『그건 또 무슨 소리?』 『무슨 소리는! 제 생일도 잊어 먹고지나갔다 그소리지,이 사람아.』 듣고 있던 윤씨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자네 같은 사람을 두고 상여 메고 나가다가 귀청 후빈다고 하는 거여.』 『내가 뭐 어때서?』 『일껏 이 얘기 하다가 딴소리를 하니 그렇지.』 『거참,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네.자네가 마누라 얘길 하는 바람에 겨우 생일 지나간 걸 알았으니.』 『왜? 알았으면 생일상 받아 먹게?』 말이 없는 김씨를 향해 윤씨가 중얼거렸다.
『뭐든 잊어버리면 좋은 거여.차라리 잘 됐지 뭐.아니 여기서,오늘이 내 생일이다 귀빠진 날이다 어쩌구 했다 해 봐.마음 심란해 지는 거야 잊어 버리고 지나간 거보다 더 하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길남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다.여기에 있으면 뭐 하나라도 더 잊고 사는 게 제일이다.태성의뒤를 따라나오며 길남은 그의 어깨가 우람하게 튼튼해 보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난 쟤가 저렇게 단단 한 몸을 가졌는지 처음 알았네.
그렇겠지.둘이 맞잡으면 뭘 해내도 해 낼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야,태성아.』 앞서가는 태성을 길남이 불렀다.그가 돌아보았다. 『너 이제보니 몸이 제법 실하구나.』 『뭔 소리야?』『길동무 하기는 좋겠다,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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