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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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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몽골의 원(元) 왕조가 중국을 지배하던 시절 최고 명필로 손꼽히던 사람은 조맹부다. 그 직전의 왕조인 송나라를 창건했던 조광윤의 11대 손이다. 이른바 송설체(松雪體)라 불리는 필체를 만들 정도로 서예에 뛰어났던 그는 그림으로도 유명했다. 문장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보여 그에게는 늘 여러 가지의 찬사가 따랐다.

관도승(管道昇)은 그의 처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이름이 높았고 남편의 실력에 걸맞은 회화와 시작(詩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대나무 그림과 관음상 등 불상을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 당시의 황제인 쿠빌라이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두 부부의 금실도 좋았다. 조맹부는 예전의 사대부들이 흔히 했던 것과 같은 축첩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부부간의 사랑이 깊어 칭송이 저잣거리에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한때 위기가 닥친 적이 있다. 조맹부가 요즘으로 치면 가수라고 할 수 있는 한 여인에게 정신을 팔리고 만 것.

최운영이라는 이 ‘가녀(歌女)’를 한 잔칫집에서 봤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맹부는 급기야 그녀를 첩으로 들어앉힐 움직임까지 보인다.

관도승의 움직임이 예사스럽지 않다. 첩으로 들여도 되겠느냐고 물어 오는 남편에게 그녀는 사(詞) 한 수를 내민다. “진흙으로 당신과 나를 빚으니, 기쁘기 이를 데 없네요, 다시 무너뜨려 물을 부어, 이리저리 섞어, 또 당신과 나를 빚지요, 내 진흙 속에는 당신이 있고, 당신 흙 속에는 내가 있지요….”

결과는 뻔했다.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으로 조맹부는 첩 들이려는 마음을 얼른 거둔다. 어쨌거나 “내 진흙 속…”의 뒤 두 마디 구절은 매우 유명하다. 요즘도 중국에서 싸움이 일거나 다툼이 격해지면 “우리끼리 왜 그래”라는 화해의 뜻을 전할 때 흔히 사용된다. 갈라진 너와 나가 우리라는 통합적인 틀에서 거듭 뭉치도록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명구다.

이 말을 되돌아 보는 것은 대선 정국에서 나타나는 너와 나의 갈라짐이 도를 넘기 때문이다. 27일자 일부 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한 통합민주신당의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심각한 우려가 도진다. 원래 선거판이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다지만 저속한 네거티브 전법이 대형 광고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지나치다.

극단의 상쟁이 남길 후유증을 곰곰 생각해 보자.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대선 후보들은 선거에 임해야 한다. 국민들은 흑색의 선전보다는 정견을 더 듣고 싶어한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