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돈 가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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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시중은행이 예금 이탈로 돈 가뭄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긴급 자금을 지원받는 경우도 나왔다. 그동안 은행들은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 왔다. 그러나 CD 발행이 늘면서 시장 금리가 치솟자 금융감독원이 CD 발행 감독을 강화하면서 돈줄이 말라 버린 상황이다. 국내 금융시장 불안으로 은행이 CD나 은행채를 발행해도 이를 매수할 곳도 마땅치 않다.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선 한은=국민은행은 7일 한은의 지급준비금(예금 일부를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것)을 마감일까지 마련하지 못해 한은에서 긴급 자금 8000억원을 수혈받았다. 선도 은행까지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다. 그 충격으로 은행 간 자금 조달 경쟁이 촉발됐다. 금융연구원 이건범 연구위원은 “요즘 예금이 계속 이탈하고 있는 데다 해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기는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매월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동성 비율은 3개월 이내의 유동성 자산을 3개월 이하 유동성 부채로 나눈 비율이다. 금감원은 이 유동성 비율을 100% 이상 유지하도록 하고 9월부터는 보고 기간을 분기에서 월 단위로 강화했다.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을 끌어당기면서 CD를 발행해도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박동영 자금부장은 “그동안 채권펀드나 머니마켓펀드(MMF)들이 주로 CD를 사줬는데 최근 당국이 펀드 편입 비중을 5%로 제한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우량 돈줄을 잡아라’=다급해진 은행들은 예금 금리를 올려 개인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이다. 또 우량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무 컨설팅까지 제공하면서 정성을 쏟고 있다. 전통적인 예금 확보 경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21일부터 정기예금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인상했다. 또 ‘국민슈퍼정기예금’에 대해서는 영업점장이 전결할 수 있는 금리 폭을 최대 0.3%포인트 올리고, 본부에 보고할 경우 다시 금리를 0.2%포인트 더 얹어 줄 수 있도록 금리 운용 기준을 바꿨다. 국민슈퍼정기예금은 국민은행 정기예금 잔액(56조7000억원) 가운데 70%(40조원)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 상품이다.

 신한은행도 27일부터 ‘파워맞춤정기예금’의 영업점장 전결 금리를 0.3~0.4%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1년짜리 예금 금리는 5.8%로, 3년짜리 예금은 6%로 올라간다. 우리은행은 12일부터 연말까지 3조원 한도 내에서 우량 고객에게 최고 0.2%포인트의 우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알짜 중소기업들도 집중 공략 대상이다. 우리은행은 우량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가업 승계 전략을 무료로 짜 주는 ‘백년대계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또 세무사 한 명, 경영컨설턴트 한 명이 한 조가 돼 2주 동안 세무 서비스도 해 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통장 거래 내역이 자동으로 회계 처리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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