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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취업 야망 품은 '인조미인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금은 사라진 극장용 대한뉴스의 단골 메뉴는 대통령 동정과 스포츠 경기 및 미스 코리아 소식이었다. 국가 대표로 뽑힌 미녀들을 보면서 남자들은 아리따운 모습에, 여자들은 부러움 때문에 잠 못 이루곤 했다. 미인 대회는 처음엔 국위 선양을 위한 민간 외교 사절단을 뽑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연예인이 되거나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현존하는 미인 대회는 약 70여 개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대회 저 대회에 중복 출전하는 아가씨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가히 미인 대회 중독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도대체 미인 대회가 뭐길래 그녀들은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대회에 참가하는 진짜 이유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한다. 그러나 그 속내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연예계 진출이다. 연예인이 되려면 미인 대회에 출전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인 대회가 연예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 중엔 미인 대회 출신이 많다. 연예 기획사가 미인 대회를 주관하고 관계자가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어떻게든 기획사의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미인 대회에 줄 이어 출전하는 이유다.
 
또 하나의 주된 이유는 취업이다. 해외 연수 정도의 펑범한 경력으로는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엔 주목받지 못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 등 외모를 중시하는 직종이 많아 미인 대회 입상 경력은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대학원 진학에 있어서도 경력란에 '00 미인 대회 출신'이라고 쓰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준비 비용만 수천만원 들기도 

미인 대회는 길어야 하루면 끝나지만 준비 과정은 그렇지 않다. 장기 자랑부터 한복·헤어·메이크업·성형까지 길게는 일 년 넘게 걸리는 준비 과정의 속사정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장기 자랑에 무슨 돈이 들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순진한 사람이다. 취재 중 만났던 김모양은 미인 대회 출전을 위해 1년 동안 벨리댄스를 배우러 다녔다고 한다. 소박하게 자신의 장기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춤이든 마술이든 아크로바트든 심사위원을 감탄시킬 만한 장기 아닌 특기를 갖춰야만 한다. 장기가 없으면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배워야 한다.
 
한복 준비에도 의외로 목돈이 들어간다. 미인 대회가 대부분 지역의 특장점을 어필하기 위해 그 지방에서 열리기 때문에 한복은 거의 미인 대회 유니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수백만원짜리 한복은 보통이다.
 
대회 당일엔 메이크업과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에 들른다. 그 비용이 또한 만만치 않다. 대회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작게는 몇 십만원부터 많게는 몇 천만원까지 든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성형 중독
 
얼마 전 여성 인기 그룹인 베이비복스 리브의 전 멤버가 성형수술로 인한 과다 출혈로 중태에 빠져 응급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얼굴이나 신체에 칼을 대는 성형수술은 이렇 듯 위험 발생 요인을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의에 의해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한다.
 
미인 대회 참가자들 중 자연 미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한 미인대회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성형을 안한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찾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작게는 얼굴에서 크게는 신체까지…. 미인 대회는 인조 미인들의 경연장이 되고 말았다.

각종 미인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성형외과 의사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날고 기는 미녀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려면 성형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녀들은 강변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서 성형 중독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고치고 또 고치고…. 결국 자신의 원래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고 만다. 미인 대회의 문제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김형빈 기자 [rjaejr@ilgan.co.kr]


제작 후기

중앙방송과 함께하는 현장 출동

미인 대회 입상하면 취업 가산점?

꽃 아가씨부터 각종 특산물 아가씨까지…. 현재 전국 팔도에서 열리고 있는 향토 미인 대회는 물경 70여 개에 달한다.
 
안산에서 열린 한 미인 대회에서 스물두 살의 여대생 윤명희양(가명)을 만났다. 한눈에 봐도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그녀는 이번이 세 번째 출전이라고 했다. 한 CF 모델 대회에서 1위에 입상한 후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됐지만 165㎝가 안되는 작은 키 때문에 미스 코리아 대회는 포기해야 했다.

그녀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건 지방 미인 선발 대회였다. 하지만 결과는 본선 진출 실패였다. 예상치도 못한 탈락은 그녀를 더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마치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탐하듯 미인 대회 입상은 그녀의 인생 목표가 되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미인 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한복이다. 한복은 미인 대회 출전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보다 예쁜 한복을 만들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각종 대회 때마다 그 특성과 성격에 맞는 한복을 특수 주문 제작하기도 한다.
 
그녀와 함께 지방 미인 대회 합숙 현장을 둘러봤다. 취업 가산점을 얻기 위해 참가했다는 미인, 연예인이 되고 싶어 나왔다는 미인, 미모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미인 등 출전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그러나 씁쓸한 것은 대부분의 미녀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전설과 잘 어울리는 미인을 뽑는다는 대회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현실이었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미인 대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에 순위를 매기고 왕관과 함께 다양한 특권을 주고 있는 미인 대회의 허와 실을 들여다보는 순간이었다.

정선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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