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라운드 추태 ‘축구가 … 죽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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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프로축구 K-리그에 생채기를 냈던 그라운드 추태가 실업축구인 내셔널리그(N-리그)까지 덮쳤다. 초유의 그라운드 추태가 벌어진 현장이 N-리그의 최강자를 가리는 챔피언결정전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더하다.

 23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미포조선과 수원시청의 N-리그 챔피언결정전은 경기 전부터 심판의 ‘특정팀 밀어주기’에 대한 우려가 일었다. 우승할 경우 K-리그 승격을 약속한 미포조선과 그렇지 못한 수원시청이기 때문에 ‘N-리그의 위상을 생각해서라도 미포조선을 밀어줄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런 주변의 상황 때문에 수원시청 선수들은 주심의 페널티킥 선언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선수가 심판을 밀치고 ▶욕설을 퍼붓고 ▶스로인 때 공을 대기심 몸을 향해 던지는 등의 작태를 보인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주심에게 달려들어 레드카드를 뺏으려 하기까지 했다는 데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스포츠가 아니라 골목 패거리들의 몸싸움을 연상시킨다. 어차피 승부가 있는 경기인 만큼 선수들의 승부욕을 나무랄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런 열정을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펼쳐 보이는 게 정도가 아니겠는가.

 스포츠는 약속이다. 팬들은 23일 오후 3시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미포조선과 수원시청이 경기한다는 사실을 믿고 경기장을 찾았다. 선수들이 정해진 축구 규칙에 따라 ‘페어플레이’를 할 것으로 기대했고, 90분간 자신의 팀을 위해 열심히 뛸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이날 경기장을 찾았던 한 축구계 인사는 “편파 판정도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선수들이 이성을 잃고 추태를 부린 것은 우리 축구의 망신이다. 이를 말리지 않은 감독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팬들이 외면하는 그라운드는 존재할 수 없다. 팬들은 이미 침 뱉기, 욕하기, 웃통 벗기 등 K-리그를 더럽혔던 추태에 신물이 났다.

 승부욕에 눈이 멀어 팬들을 외면한 선수와 팀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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