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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중독 될수록 허무해지는 명품 … 이젠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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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스스로 ‘명품중독자’라고 고백할 정도로 브랜드 문화를 맹종했던 닐 부어맨. ‘브랜드 제품 없는 삶’을 선언한 뒤 자신이 갖고 있던 브랜드 제품을 모두 태워버렸다. [사진제공=미래의창]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원제 Bonfire of The Brands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미래의창,
352쪽, 1만2000원

‘명품 중독자’ 32세 영국 청년의 ‘브랜드 결별기’다. 이벤트 프로모터인 저자 닐 부어맨은 지난해 9월 17일 런던 도심의 한 광장에서 브랜드 화형식을 치렀다.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브랜드 제품을 모두 불태워버린 것이다. 랄프로렌 셔츠 14벌, 비비안 웨스트우드 점퍼 3벌, 캘빈 클라인 팬티 15장…. 거기에다 루이비통 가방, 샤프 LCD, 콜게이트 치약 까지 무려 2만1345파운드(약 4140만원)어치였다. 그날의 화형식은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보도도 됐다.

아니, 브랜드에 무슨 죄가 있기에. 명품을 사는 게 뭐가 나빠서.

맞다. 이 책이 드러내는 브랜드에 대한 반감도 실은 브랜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새로운 자아상을 확립하기 위해, 또 자신이 동경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유명 브랜드와 기어이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부어맨이 브랜드에 매여 살게 된 계기는 브랜드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던 초등학교 입학 첫날의 경험이다. “무슨 운동화가 그러냐”는 친구들의 핀잔을 듣고 그는 비로소 ‘브랜드’에 눈을 떴단다. 운동화 옆을 장식하는 줄무늬, 티셔츠 앞가슴에 앉아 있는 악어·독수리·호랑이들, 가방 옆구리에서 펄펄 뛰는 은빛 퓨마…. 그 뒤 20여 년 동안 부어맨은 그날의 ‘한’을 풀 듯 살았다. 아디다스의 새 고급 브랜드 Y3을 집안에서 입고 돌아다니며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기는 데서 흡족한 기분을 느꼈고, ‘색소와 향료를 전혀 쓰지 않고 그저 정성만 쏟아 부어 만든다’고 광고하는 심플 비누를 쓰면서 스스로 순수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양말은 랄프로렌. ‘만일 오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간다면 간호사가 내 양말을 보고 좋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라는 게 부어맨의 속내다.

부어맨에게 브랜드는 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브랜드 몇 가지만 보면 2∼3초 안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브랜드와 결별하게 된 것은 ‘허무감’때문이었다. 유명 브랜드의 명품을 갖기 위해 그토록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데, 왜 기대만큼 행복하지 못한 걸까. 브랜드가 지속적인 만족감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과감하게 결별을 선언한다.

부어맨은 이제 아버지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 줄리엣이 임신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브랜드 결별’의 성과라고 해석한다. TV를 없앤 결과라는 것이다. 집에서 TV를 덜 보게 될수록 더 많은 부부관계를 맺게 되고, 따라서 아이를 가질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논리다.) 자식의 등장은 그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겼다.

“또래들과 가까워지는 데 필요한 신분의 상징물들을 갖춰주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그러면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면서…”

그의 갈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 브랜드 제품에 의지하지 않고도 나의 두 발로 꿋꿋이 설 수 있으며,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들지도 않게 됐다”는 그의 선언이 유효한 이상 걱정은 없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지 않는가. 그의 자식도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우뚝 세울 게 틀림없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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