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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선거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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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2003>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미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서 가운데 하나인 『대통령의 성적표』(찰스 파버, 리처드 파버 지음)는 외교·국내업무·행정·지도력·성격 등 5개 분야로 나눠 역대 39명의 대통령을 종합 평가했다. 그 결과 링컨은 78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조지 워싱턴,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2점 차이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링컨이 재선에 도전했던 1864년 공화·민주당의 네거티브 선거전은 치열했다. 1863년 노예해방 선언으로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전쟁광 링컨 대 소인배 맥’이라는 표현에는 네거티브의 살기가 느껴진다. 민주당은 링컨을 독재자, 괴물, 무식한 에이브(링컨의 닉네임), 유인원, 악마, 학살자 등으로 공격했다. 이에 맞서 링컨 측은 장군 출신의 조지 매클래런 후보를 ‘소심한 패배자’로 몰아붙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가 싸웠던 2004년 대선 역시 9개월간 이전투구(泥田鬪狗)를 거듭했다. 이라크전쟁과 후보의 군 복무 경험을 놓고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도망자라고 공격하는 데 열을 올렸다.

 네거티브의 위력은 동서고금을 뛰어넘는다. 고려 제32대 우왕(1374∼1388년 재위)은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요승 신돈의 자식’이라는 이성계 지지파의 주장에 밀려 왕위에서 쫓겨났다. 중종반정·인조반정 같은 궁정 쿠데타 뒤 폐위를 당한 군왕에게는 예외 없이 ‘패륜아’ ‘폭군’ 딱지를 붙였다. 기업에선 이따금 성(性)·범죄·죽음 같은 부정적 소재를 활용하는 광고 기법을 구사한다. 의류 패션업체 베네통의 루치아노 회장은 10여 년 전 알몸 광고에 출연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케팅 세계의 네거티브는 그나마 애교라도 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선 후보 자질 검증이라는 명분 아래 네거티브 공방이 기승을 떤다. 과거의 ‘독재자 대 빨갱이’ 비방전을 무색하게 한다. 63년 대선 당시 윤보선 민정당 후보는 박정희 공화당 후보를 겨냥해 “여순반란사건과 관련 있는 공산주의자였을지 모른다”며 사상 논쟁에 불을 댕겼다. 이후 색깔론은 야당을 괴롭히는 부메랑이 됐다. 한국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 실천본부는 최근 주요 후보에게 “분야별 정책 공약을 담은 매니페스토 공약집을 25일까지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대선이 한 달도 안 남았지만 정책 대결은 실종된 채 네거티브만 판친다. 선거 후 국민이 어떤 부메랑을 맞을지 벌써부터 후유증이 걱정된다.

이양수 정치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