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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급제 없애야 택시가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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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본 국토교통성은 우리의 건설교통부에 해당한다. 지난해 일본 출장길에 국토교통성이 2006년 7월 발간한 ‘택시 서비스의 미래비전소위원회 보고서’라는 자료집을 구했다. 이 자료집은 택시가 ‘공공(公共) 교통수단’이라는 점을 무척 강조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 대해서도 공공교통 대신 대중교통이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쓰는 터라 “맞아! 택시에도 공공성이 있다고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택시가 공공 교통수단임을 뼈 아프게 일깨워 준 것은 홍대 앞 여 사무원 살인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 있다. 특히 도급택시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택시의 겉모양은 똑같다.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택시와 안전한 택시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를 더 아연케 하는 것은 성남 여 승무원 납치 살인사건을 일으킨 해당 택시회사에 대해서도 면허취소 2대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점이다. 유가 보조금이나 부가세 면세 혜택도 계속됐다. 사전 예방은커녕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마저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도급택시가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이유는 택시산업의 중요한 한 축인 노동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의 희망 소득 수준은 연봉 2600만원 수준인데 공식적으로 잡히는 소득은 900만원, 집에 가져가는 모든 돈을 합쳐도 실질 소득은 15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의 택시 근로자 연평균 급여 420만 엔(약 3600만원)과 엄청난 차이다.

 직무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점이다. 평균 근속 연수가 9.2년인 일본과 전혀 달리, 한 해에 전체 운전자 중 퇴직자의 비율이 72%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경영 압박이 오자 도급제의 치명적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급제는 택시산업이 제 무덤을 파는 자멸 행위다.

 물론 대부분의 도급택시는 성실하게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순수한 뜻을 가진 선량한 사람들에 의해 운행된다. 여기에 악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 음성적인 뒷거래 관계가 발전해 브로커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범죄에 악용될 여지를 갖고 있다. 회사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난 택시가 버젓이 도로를 운행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노리는 범죄자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급택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이 있어야 새 살이 차오르듯 도급택시 사업자들의 희생이 있어야 택시의 공공성이 회복될 수 있다.

 첫째 도급제 등 불법행위 업체에 대해서는 적발과 동시에 해당 회사 소속의 모든 차량에 대한 면허취소 처분을 내려야 한다. 엄격한 법 집행이 있어야 한다. 공공성이라는 기본을 포기한 부적격 사업자에게 사업을 계속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연간 6000억원에 달하는 부가세 경감세액이나 유가 보조금의 일부를 재원으로 확보해 과잉 공급을 해소하고 택시산업의 합리화, 적정화를 꾀해야 한다. 업계의 자발적인 감차분에 대해 이 재원을 활용해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택시 시장의 구조조정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셋째 전액 관리제의 실시와 경영 투명성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전액 관리제를 실시하는 업체와 운전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상황은 개선해 부담을 낮추고 차액을 보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서울시 등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브랜드 택시의 경우 전액 관리제 실시 업체로 한정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경영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지속적인 택시 요금의 인상을 통해 파이를 키움과 동시에 운송 원가에서 운전자의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70% 선까지 높여 택시 운전 직의 매력을 키워야 한다. 택시 사업자들의 각성과 당국의 제도 개선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삼진 한양대 교수·교통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