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프린스 오브 웨일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1세는 뛰어난 군인이었다.왕이 되기전 십자군원정(遠征)에 참전해 용명(勇名)을 날렸으며,재위(在位)35년동안 많은 정복(征服)사업을 벌였다.1277년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 정복에 나서 84년 웨일스를 잉글랜드 의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웨일스의 마지막 왕자 루웰린은 에드워드 1세의 군대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 정복사업을 끝낼 무렵 엘리너왕비는 북웨일스의 커나번성(城)에서 아들을 낳았다.일설(一說)에 따르면에드워드 1세가 루웰린왕자의 죽음으로 비탄(悲嘆)에 잠긴 웨일스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웨일스 귀족들을 모은 자 리에서 새로 태어난 아들을 보이면서『여기 그대들의 새 왕자가 있다』고 소개했으며,이것이「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좀 다르다.에드워드 1세는 왕자가 17세 되던해인 1301년 그를 왕세자에 책봉(冊封)하면서 자신의 웨일스정벌(征伐)과 왕자의 웨일스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프린스 오브웨일스라는 칭호를 붙였으며,그후 영국 왕실의 전통이 됐다는 것이 사실(史實)이다.
현재의 찰스왕세자에 앞서 영국에는 모두 20명의 프린스 오브웨일스가 있었다.그중 7명은 왕이 되지 못했다.프린스 오브 웨일스 아닌 왕자가 왕이 된 경우도 있었다.또 책봉된 나이도 큰차이가 있다.조지 2세는 태어난지 겨우 닷새만 에 프린스 오브웨일스가 된 반면 조지 5세는 30세가 넘어서야 될 수 있었다. 찰스왕세자는 21세때인 1969년 7월1일 유서깊은 커나번성에서 엘리자베스여왕에 의해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책봉됐다.1911년 커나번성에서 첫번째 책봉식을 올린 에드워드 8세에 이어 커나번성에서 왕세자 자리에 오른 두번째 프린스 오브 웨일스다.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즉위후 채 1년을 넘기지못하고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좌(王座)를 버리고 말았다.
영국 왕실은 최근 곤경(困境)에 처해 있다.찰스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할 것이며,이혼자는 왕이 될 수 없는 국법에 따라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일부에선 군주제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찰스는 과연 비 운(悲運)의프린스 오브 웨일스로 끝나고 말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