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未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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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떤 나그네가 객지에서 묵게 되었는데 주인집의 굴뚝이 곧게 나있어 불길이 새어나왔다.게다가 옆에는 장작이 가득 쌓여 있어서 나그네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굴뚝을 굽히고 장작도 옮겨 놓으시오.그렇지 않으면 불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니나다를까.이튿날 정말 불이 났다.다행히도 이웃 사람들이 도와주어큰 피해는 없었지만 나그네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주인은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좌석을 불끌 때 도와준 노력 정도에 따라 배치했으므로 화상을 입은 사람은 맨 상석에,약간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다음 자리에 앉혔다.그러면서 나그네에게는말석조차 주지 않고 서있게 했다.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주인장,내가 보기에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소.잔치를 벌여노고에 답하는 것은 좋지만 불이 나기 전에(未燃) 미리 방지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아니오.진작 나그네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오.그렇다면 저 나그 네의 공은 어떻게 된거요?』 하면서 저만큼 서있는 나그네를 가리켰다.그제서야 주인은 잘못을 뉘우치고 얼른 나그네를 맨 상석에 앉혔다.
곡돌사신(曲突徙薪.굴뚝을 굽히고 장작을 옮김)의 고사다.모든것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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