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경수로 협상만은 우리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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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핵 문제가 미국과 북한간에 타결됐다.
예상했던대로 북한은 그간 끈질기게 노려왔던 외교적 목표를 이번에 거의 달성했다.
북한은 40억달러가 되는 경수로를 공짜로 지을 수 있게 됐고거기다가 경수로 완공 기간인 10여년동안 중유(重油)까지 공급받기로 했다.또한 북한 외교의 수십년 숙원인 미국과의 수교도 가능케 됐으니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셈이다.
북한이 명확히 양보한 것은 앞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것과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로의 복귀 약속이다.그러나 NPT체제로의 복귀는 북한이 탈퇴를 선언했을 때부터 억지였으니 사실상 양보랄것도 없고 원상회복에 불과하다.
미국도 내년봄에 새로 연장해야할 NPT체제에 북한을 붙잡아 두게 됨으로써 국제적인 핵확산 방지라는 자국의 1차 목표를 달성했다. 반면 한국이 얻은 것을 따지자면 궁색해진다.
우리 정부가 경수로 건설에 앞서 과거핵에 대한 투명성 보장을요구한 것은 우리의 안보 때문이었다.
미국은 북한이 한두개의 핵을 가지고 있다해도 자국의 안보엔 문제가 없다.북한이 태평양너머로 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앞으로 더이상 핵개발을 막아 호전적인 중동국가나 테러단체들에게 확산되는 것만 막으면 미국의 국가 이 익은 만족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 확인 안된 한두개의 핵 때문에 계속 북한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안보적 측면은 물론 앞으로의 남북간 각종 협상에서도 북한은 핵카드로 계속 우리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핵 협상은 첫 단추 부터 잘못 끼워졌다.북한핵문제는처음부터 남북의 문제로 우리가 다루었어야 할 테마였다.남북간에는 이미 비핵화 선언에 대해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를 따돌리고 미국과만 얘기하려 했기 때문에美-北회담이 됐고,美-北회담이 되다보니 우리의 국가 이익은 뒤로 제쳐진채 미국과 북한의 이익이 우선되게 됐다.
경수로 건설 비용의 최소한 절반에다 중유까지 결국 우리가 공급케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6共시절 舊소련에 준 14억여 달러를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도못받고 있는데 이제는 국민의 피같은 세금으로 북한의 살림살이까지 맡게 되었다.문제는 지금부터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는 이제 돈까지 내가며 미국과 북한간의 회담을 지금과 같이 뒷전에서 또다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점이다.앞으로의 경수로 지원문제 역시 미국과 북한간의 회담으로 진행되게 되어있기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외무장관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한반도 평화 정착의 계기가 됐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벌써 남북경협이 어떻고,남북화해가 어떻고 하는 성급한 목소리가 나온다.북한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단순한 것은 아닐까.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말했듯 북한과의 4백차례의 회담이 모두 무위로 끝났다.북한은 이번에도 마지못해 남북대화를 하겠다고합의했다.
***對北인식 너무 안이 과거 미국을 제국주의,광주민주화운동원흉으로 비판하던 반미(反美)세력들은 유독 핵협상 과정에서 만은 친미(親美)로 돌아섰다.이번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환영 일색이다.그렇다면 정부와 이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같은 것은 아닐까. 앞으로 벌어질 경수로 협상 의자엔 미국 대신 우리가 앉아야 한다.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미국과 함께 앉는 길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그에 앞서 북한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정부부터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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