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실용외교 시동-북한의 타협배경과 향후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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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北韓)의 외교는 성공적이었다.
제네바 합의는 한반도에 핵위기를 몰아냈다는 점에서 남북한(南北韓)과 미국(美國)모두 성과로 기록될 수 있다.그중에서도 북한은 가장 외교적으로 얻은 것이 많았다.북한이 사용한 방법은 국제관행과 질서에 대한 위협이었지만 오히려 그 결 과로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이 관계 개선과 사실상의 경제 봉쇄 조치를 해제하기로 약속했다.탈냉전(脫冷戰)시대 유일한 패권(覇權)국가인 미국의 이같은 호의적 조치는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신용상승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당장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기름을 받게 됐고,일본으로부터 배상금도 받아낼 수 있게 됐다.파산(破産)선고를 받고 돈 빌릴 데도 없던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자금 조달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런 외교적 성공은 김정일(金正日)시대의 가장 큰 첫 업적으로 손꼽힐 것이다.
이 합의를 김정일의 실용주의(實用主義)노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핵기술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60년대,한국보다 앞섰다.북한은 방사화학기술을 축적해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북한은 방사화학실험실을 폐쇄해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을사실상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보다는 다른 방식으로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 6월 김일성(金日成)은 카터에게 핵개발 대신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체제를 보장받겠다는 결심을 밝혔다.또 한국과의 관계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제네바 합의는 김일성의 이 약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지난 연말 결정한「조정기 경제방침」(94~96년)인 무역제일주의.경공업제일주의.농업제일주의라는 제한적 개방노선과도 맥을 같이 한다.자본주의권과의 경제협력 강화와 인민 생활 중시라는 방침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는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의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改革)노선은 이미 84년 김정일이 경공업혁명을 강조하고,합영법(合營法)을 주도했다가 실패했던 것이라고한다.전문가들은 이런 김정일이 다시 김일성을 설득해 실용주의 노선으로 가게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더군다나 김일성의 이 결정을「유훈(遺訓)」으로 받들어 실행에옮긴 것 자체가 앞으로 그의 노선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있다. 따라서 이같은「제한적 개방」노선은 김정일시대에도 계속될것이며,이번 합의는 그런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다만최근 북한의 동향으로 보아 두번째 약속인 남북관계 개선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후 북한은 대남(對南)통일 전략(하나의 조선)에서 체제 유지(두개의 조선)로 큰 방향 선회를 했다.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유엔 동시 가입을 받아들인 것부터 그랬다.
북한은 더이상 사회주의국가와의 물물교환에만 매여있어서는 몰락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그래서 일본과의 수교부터 시작했으나 실패,결국 대미(對美)수교에서 맥을 찾은 셈이다. 북한측 협상대표인 강석주(姜錫柱)가 18일 이번 협상의가장 큰 의미를「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와 신뢰 조성」이라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성공으로 김정일의 노선은 좀더 힘을 얻을 것으로보인다.따라서 통제된 경제개방정책도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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