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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김해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상을 가서야 「행복 복지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인천의 부녀기술양성원이 중학교라면 행복 복지원은 대학교같은 정도의 규모였다.수용자가 남녀를 합해서 3천여명이나 된다고 했다.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 그러니까 길거리의 거지같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수용하고 있는 곳이라는 거였다. 써니엄마와 나를 맞아준 복지원 사람은 오십대 후반의 여성간부였는데-심부장이라고 했다-비교적 덤덤하게 복지원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친절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함부로 적의를 드러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글쎄요.가끔은 실종됐던 사람들을 가족들이 여기서 발견하고는하는 게 사실입니다.크게는 두가지 경우가 있어요.하나는 집밖에있다가 갑자기 무슨 일로 발작을 일으킨다거나 해서 기억상실증에걸린 사람이 여기 오는 경우가 있구요,또 어 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집에 돌아가기 싫으니까 집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여기에 눌러있기도 하지요.』 심부장이 우리를 인도해서 여성수용자들이 있는 곳들을 한바퀴 둘러보게 했다.운동장에서는 트레이닝복을유니폼으로 입은 여자들이 한쪽에서는 소리를 지르면서 피구를 하고 있었고,다른 한쪽에서는 운동장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나이든 여자들 이 더 많은 것 같았고 가끔은 십대 초반의 어린 계집아이도 눈에 들었는데 한결같이 눈빛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그녀들은 세상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는듯한 표정을 하고 나를 한번씩 흘긋 쳐다봤을 뿐이었다.
숙소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가볼 필요가 없다고 심부장이 그랬다.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서 기술실습장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을 때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그랬더니 거기에는 남자화장실이 없다는 거였다.그래서 나는 혼자 심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물로 갔다.
그 건물에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일층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봤지만 화장실같은 데는 없었다.그래서 지하실 쪽으로 난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갔다.계단의 모서리를 한번 꺾어지니까 거기는 더 어두웠다.내 구둣소리가 떠벅떠벅 울리는 게 내 귀에도들렸다. 갑자기 어디선가 신음소리같은 게 들린 것 같았다.나는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았다.우우우…아아아…우아아…. 소리나는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가 보았다.지하실에는 꼬마 백열등 하나가 구석에 달려 있을 뿐이었지만 눈이 어둠에 조금씩길들여지고 있어서 지하실 안이 조금씩 눈에 들고 있었다.여기요…여기요…누군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그리고 팔이 하 나 삐쭉 튀어나와 허공을 젓고 있는게 보였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문의 상단에 쇠창살을 박은 방의 안쪽에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머리는 마음대로 뒤엉킨 모습이었고 얼굴도 엉망이었다.스물 몇살쯤이나 됐을까.하여간 써니는 아니었다.
『제발 좀요…이젠 좀…꺼내주세요.제발요….』 여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자꾸 같은 말만 했다.나는 여자 앞에 가만히 서있기만하다가 물었다.
『혹시 다른 데 또 갇혀 있는 여자가 없나요…나는요,선희라구내 친구를 찾으러 왔거든요.열일곱 살이구 서울에서 살았구요….
』 발소리가 들리고 경비 복장을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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