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남북경협-北정책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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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북한은 7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경제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외화가 부족해진데다 78년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이후 80년부터서야 비로소 서방과의 교류를 조심스럽게저울질하게 됐다.
이때부터 물꼬를 튼 북한의 부분적인 개방은 크게 3기로 나눠볼 수 있다.
제1기는 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로 서방자본 및 플랜트 도입 시기다.이때 북한은 외국기업의 북한 진출은 허용하지 않은 채 자본과 기술만 들여오고자 했다.
제2기는 84년 9월 합영법(合營法)을 마련한 후 90년대 초반까지로 법적 장치를 갖추면서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도모한 시기다. 합영법은 북한이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최초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합영법 제정과 때를 같이 해 북한은 뒤처진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경공업분야의 발전이 시급하다고 보고 나일론 등 섬유산업에 힘쓰면서 피복 등의 해외 수출에 주력했다.
제3기는 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로 자유경제무역지대를 도입한 경제특구 개발시기다.
자유경제무역지대 선포 이후 이 지역의 운영을 위해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해외에서 투자유치 홍보활동을 펴 왔다.
예컨대 92년 12월 외국인투자법과 외국인기업법에서는 외국기업의 1백% 투자를 허용했는데 이때 공식적인 법조문에 자유경제무역지대라는 표현이 처음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까지 투자유치 실적은 전무하고 다만 중국 길림성의기업들과 이 지역에 대한 철도 및 도로.항만 사업에 합의해 놓은 상태지만 자본 부족으로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이성대(李成大)대외경제협력위원장은 부진한 대외교역을 본궤도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수출품의 선적기일을 정확히 지키는등 대외신용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작년부터「신용제일주의」를 주창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 뒷걸음질치는 북한경제는 좀처럼 회생할 조짐을 보이지 않아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경제개방시기를 언제로 잡을지는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미국과 오랫동안 끌어 온 핵문제를 18일 타결지음으로써그 시기를 상당히 앞당길 것이고 그 결과 말만 무성한 채 실천이 따르지 못했던 남북경협도 본궤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만 무성한 상태다.
〈朴義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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