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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캐스트 "디즈니 사겠다"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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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 최대 케이블 TV 회사인 컴캐스트가 '만화영화 왕국' 월트 디즈니를 6백6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11일(현지시간) 제안했다.

디즈니의 부채 1백19억달러도 함께 인수하는 조건이다. 적대적 인수 제의에 대해 디즈니는 "심사숙고 중"이라고 밝혔다. 성사되면 컴캐스트는 타임워너를 누르고 세계 최대의 미디어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컴캐스트가 제시한 가격은 전날 디즈니 주가(24.07달러)에 10%의 프리미엄을 얹은 것이다.

컴캐스트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로버츠는 "이틀 전 마이클 아이스너 디즈니 CEO에게 이 같은 제안을 했으나 아이스너가 협상에 임할 뜻을 보이지 않아 모든 주주에게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합병에 미온적인 아이스너 대신 주주와 이사회를 직접 공략하는 전술을 택한 것이다.

디즈니 영화사를 비롯해 ABC방송.미라맥스영화사.테마파크.스포츠 채널 ESPN 등을 거느리고 있는 디즈니는 최근 전성기였던 1990년대 초반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흥 애니메이션 명가로 부상한 픽사와 손잡고 최근 몇년간 '니모를 찾아서' 등 잇따른 히트작으로 재미를 봤으나 지난달 말 결별했다.

여기에다 아이스너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잡음도 새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조카인 로이 디즈니 이사가 아이스너 회장과의 불화로 회사를 뛰쳐나와 현재 아이스너 축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컴캐스트의 인수 제의가 이 같은 디즈니의 경영 불안정과 내분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사 가능성과 관련, 투자은행인 CSFB의 애널리스트인 윌리엄 드류리는 컴캐스트의 제시 가격이 너무 낮다며 주당 인수가격이 30달러는 돼야 디즈니가 응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AOL과 타임워너, 비벤디와 유니버설 등 미디어 업체들 간 결합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전례도 합병에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경쟁 당국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합병 승인 여부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케이블망이라는 네트워크를 가진 컴캐스트와 미국 최대의 콘텐츠를 보유한 디즈니가 결합에 성공하면 매우 생산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메릴린치의 제시카 코헨은 "두 회사는 합병하기에 완벽한 파트너"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시가 총액 1천2백50억달러에 달하는 거대 미디어.연예.통신 복합기업이 탄생하게 될 경우 생존 위기에 내몰릴지도 모를 경쟁 업체들의 대응도 관심거리다. 타임워너나 바이어컴.비벤디.유니버설 등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월트 디즈니 인수전에 뛰어들거나 서로 합종연횡을 도모함으로써 관련 업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날 발표가 나온 뒤 컴캐스트 주가는 8% 하락한 반면 디즈니는 15% 가까이 뛰었다. 컴캐스트가 제시한 인수가격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디즈니는 이날 적대적 M&A 제의를 받고 장 마감 후 발표하려던 실적을 장중에 앞당겨 내놓았다. 디즈니의 1분기 순익은 6억8천8백만달러(주당 33센트)로 지난해 동기의 3천6백만달러(주당 5센트)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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