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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어이없이 깨진 한 부부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우리 명지는 어디 갔지.아빠가 보고싶어 전화했는데.』 14일 오전 홍콩에서 갱단과 경찰의 총격전에 휘말려 어이없이 숨진강상보(姜相寶.31.컴퓨터프로그래머)씨의 부인 최순자(崔順子.
31)씨에게는 사고 전날 오후6시쯤 걸려온 이 다정한 전화 한통화가 남편과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 가 돼버렸다.
신체장애를 극복한 두사람의 러브스토리,컴퓨터회사를 차려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겠다던 남편의 꿈,네살배기 아들과 달콤하기만했던 가정…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산산조각나고만 것이다.
간호전문대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崔씨는 84년 친구 소개로 경남대 전산과 학생이던 姜씨를 처음 만났다.
차분하면서도 자상했던 姜씨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소아마비를 앓아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집안의 반대가 심했고,둘은 그후 4년간 헤어졌다 만나기를 거듭했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끝내 두사람을 묶어 8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姜씨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제주G호텔 전산실 컴퓨터시스템을 혼자 구축해내는등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컴퓨터프로그래머였던 姜씨는 컴퓨터프로그래머 1급 자격증을 따자 (주)한국전자계산에 스카우트돼 89년 8월부터 서울노원구상계동의 조그만 아파트에 전세방을 얻고 서울살 림을 시작했다.
이듬해 아들 명지(4)군이 태어났고 姜씨가 해외출장이 잦아 자주 떨어져 있다는 점 외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한쌍이었다.
지체장애를 한탄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姜씨는 바쁜 시간을쪼개 광운대 전산과 대학원 야간강좌를 수강할 정도로 모든 일에열심이었고,『너무 힘들지 않느냐』는 아내에게『젊어서 고생해 내회사를 한번 차려야지』라며 다정히 손을 잡아 주는 그런 가장이었다. 姜씨는 3개월 예정으로 조흥은행 홍콩지점의 전산화를 위해 출국,추석때 잠시 서울에 들러 가족을 만난뒤 지난달 26일홍콩으로 돌아갔다가 변을 당했다.
『엄마 왜 자꾸 울어,왜 그래,응.』부인 崔씨는 아빠의 죽음도 모른채 칭얼대는 명지군의 손을 꼭 잡으며 또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鄭耕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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