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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만 있고 '정책'은 없는 대선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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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선이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지만 선거 과정에서 핵심 변수인 정책 이슈가 실종되고 있다. 이번에도 유력 대선 후보들은 경선 전부터 비전과 정책의 제시보다 지역주의 동원에 치중해 왔고, 지금도 지역주의에 기반한 합종연횡 식 선거공학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주의 문제조차 시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지역주의는 내적으로 크게 변모하고 있다. 과거 지역주의는 특정 지역에 연고를 둔 중앙정치 엘리트들이 권력 경쟁에서 지역민을 동원하는 ‘정서적 지역주의’ 내지 ‘정치적 지역주의’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주의가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지역민이 독점적인 지역 이익을 추구하고 그러한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정치 엘리트들을 지지하는 ‘정책적 지역주의’ 또는 ‘이해적 지역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행정수도’ 공약에 대한 충청권 지역민의 압도적인 지지와 그에 반대하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지역민의 사생결단 식 저항에서 단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에서 지역주의가 상대적으로 완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서울·경기 지역주의’라는 신종의 출현으로 양적으로는 전과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엽말단적인 지역 현안에서부터 중장기적인 국가 개발사업에 이르기까지 온갖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약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하는 점도 있지만, 지역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상충되는 공약들을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미 착공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행정수도로 격상시키겠다”든지 “수도에 버금가도록 하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한 수도권 규제 문제에 대해서도 서울과 지방에서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지역주의에 편승한 행태 때문에 정책경쟁은 더욱 요원하다고 하겠다.

지금과 같은 대선 환경에서는 지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이럴 경우 정책경쟁은 사라지고 그 피해는 유권자들뿐 아니라 후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렇게 본다면 역설적으로 지역주의를 쟁점화해 후보들로 하여금 지역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단과 처방을 내놓도록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내실 있는 지방분권과 질 좋은 균형발전에 대한 다양한 정책과 공약들이 제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후보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유재일 대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