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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는 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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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얼마 전 프랑스 TV에서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을 물어보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우리 아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싶어 유심히 지켜봤다.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과 티에리 앙리의 이름이 여러 번 나왔다. 과학자나 소방관도 꽤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으면 으레 등장하는 ‘대통령’이란 직업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진행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한 아이에게 “혹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다. 어린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통령을 하기 싫은 이유를 말했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요. 대통령은 아주 바쁘게 돌아다니는 거래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옴니 프레장스(omni presence: 어딜 가나 나타나는)’라는 별명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그 말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한 프랑스 언론은 최근 사르코지가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의 정의를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기 가장 어려운 곳’으로 바꿔놓았다는 우스갯소리를 소개했다. ‘부지런한 대통령’ 사르코지가 늘 얘깃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는 6개월 전 취임 첫날부터 대통령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바로 그날 오후에 독일로 날아갔다. ‘강한 프랑스’를 위해서는 유럽의 중심축인 프랑스와 독일 관계가 좀 더 발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평소 주장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사르코지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양국의 우정을 확인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럽을 위한 제안을 여럿 내놓았고 합의까지 이뤄냈다.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이른바 ‘미니헌법’을 들고나왔다. EU 헌법이 부결된 뒤 표류 중이던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위해 의미 있는 제스처였다. 반대하던 폴란드를 설득하기 위해 바르샤바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결국 미니헌법이 채택되면서 사르코지의 외교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모로코에서 프랑스 대통령의 비즈니스 외교사에 길이 남을 수완을 보여줬다. 그는 모로코에 고속전철인 TGV를 팔았고, 원전 설치와 무기 도입을 약속받았다. ‘세일즈 외교의 진수’라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과의 관계도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인들은 참전을 거절한 프랑스가 밉다며 감자튀김을 ‘프렌치 프라이’ 대신 ‘프리덤 프라이’라고 바꿔 불렀다. 그러던 그들이 얼마 전 사르코지의 미국 의회 연설 때 29 차례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설이 이어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취임 초부터 “미국은 우리의 친구”라고 여러 번 손을 내민 덕분이었다.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미국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걸 아는 현실주의자의 선택이었다.

프랑스 안에서의 변화는 더 크게 느껴진다. ‘더 일해서 더 벌자’는 구호로 기업에서는 근로 시간 연장 바람이 불고 있다. 파업을 해도 온 나라가 멈춰서는 일은 사라지게 됐다. 파업 중에도 지하철·버스는 돌아가게 하는 ‘최소 서비스 제도’를 도입한 덕분이다. 비효율의 극치로 불려온 공직사회에도 칼을 댔다. 공무원 수를 줄이고, 여기서 얻는 수입을 공직사회에 인센티브로 돌아가게 했다. 사르코지는 불과 6개월 동안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극적인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뛰는 대통령을 보면서 프랑스 국민이 오랜만에 새로운 활력을 느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사르코지를 믿어 보자’는 사람이 60%를 넘는다.

한국에선 다음 달 새 대통령을 뽑는다. 진정 국민을 위해 부지런히 뛰는 대통령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사르코지를 보니 대통령은 야당과 언론, 그리고 가진 사람들과 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기엔 할 일이 너무 많은 직업이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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