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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핸드볼대표팀 주장 남은영 은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아시안게임 우승을 귀중한 선물로 간직하겠습니다.』 「코트의재간둥이」남은영(南恩英.금강고려.24)이 13일 여자 핸드볼 일본과의 최종 3차전을 승리로 이끈뒤 4년간 때묻은 대표팀 유니폼을 반납했다.
1m62㎝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상대 진영을 종횡무진 누비는 남은영은 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이번 아시안게임에는 주장으로 어린 후배들을 이끌며 금메달을 만들어 냈다. 『그동안 힘든 때도 많았지만 하늘에 계시는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은영은 의정부국교 6학년이던 82년11월26일,야채 노점상을 하던 부모가 졸지에 연탄가스로 돌아가신뒤 그 슬픔을 운동으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공격수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
『부모님을 잃고 상심도 많이 했지요.그러나 할아버지(南廷九.
76).할머니(姜大連.74)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아무 것도 물려받은 것이 없게된 남은영은 어릴 때부터 키워온 간호사의 꿈을 버리고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체육특기자의 길을 선택,의정부여중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매일 8시간 이상의 힘든 훈련이 계속됐고 너무 힘들어 코피를쏟은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의정부여고로 진학한 南은 빠른발과 재치있는 플레이로 팀을 고교최강으로 이끌었고 실업과 대학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갈림 길에선 남은영의 선택은 실업팀인 초당약품이었다.
할아버지.할머니와 언니.남동생등 5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초당약품에 입단,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고병훈(高丙勳)감독을 만나 남은영은 급성장했다.작은 키로는 이너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사이드로 포지션을 바꿨고 91년2월마침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아시안게임 우승을 마직막으로 이제 태극마크를 단 그의 날렵한모습은 볼수 없게 됐지만 당분간 금강고려 소속으로 선수생활은 계속할 방침이다.
[히로시마=金相于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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