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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지역 갈등 남북으로 쪼개질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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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벨기에 남부(프랑스어)와 북부(네덜란드어)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언어권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18일로 161일째 공전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이참에 갈라서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북부 플랑드르 지역은 대체로 부유하고, 남부 왈롱 지역은 상대적으로 가난해 177년 전 독립 이후 지금까지 지역감정으로 인한 반목이 끊이지 않았다. 가난한 남부가 북부 유권자가 낸 세금을 가져간다는 이유에서다. 1988년에도 연정 구성 협상이 148일 만에야 타결됐다.

◆연정 협상 난항=6월 10일 치러진 총선에선 중도 우파 정당인 기독민주당과 자유당이 전체 150석 가운데 81석을 차지해 어렵지 않게 연정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두 정당은 언어권별로 독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 사실상 4개의 정당 간에 공동 정책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라 협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자치권 확대다. 부유한 플랑드르 쪽은 적극 찬성이지만 왈롱 쪽은 플랑드르에서 들어오는 교부금이 중단될까 봐 반대하고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플랑드르에서 왈롱으로 넘어간 교부금이 56억 유로(약 6조5000억원)에 이른다. 매일 1인당 2.5유로를 지원하는 셈이어서 플랑드르 주민들은 "왜 우리가 왈롱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며 불평해 왔다.

또 다른 현안은 브뤼셀 선거구 재획정 문제다. 인구 100만 명인 브뤼셀은 지역적으로는 플랑드르에 속해 있지만 주민의 90%는 왈롱계다. 브뤼셀 선거구는 외곽의 플랑드르권인 할레-빌보르데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플랑드르 쪽은 선거구를 쪼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왈롱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 하원 내무위에서 프랑스어권 의원들이 퇴장한 사이 네덜란드어권 의원들이 선거구 분리안을 일방적으로 통과해 양측의 대립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분리 반대 시위=18일 수도 브뤼셀에 모인 시위대 3만5000명은 벨기에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이들은 "소수에 불과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나라를 둘로 쪼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권과는 달리 일반 국민은 대부분 분리에 반대하고 있다.

한 시위자는 "통일된 독일뿐 아니라 분단된 남북한도 하나로 합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나라 안에 장벽을 쌓으려 하고 있다"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마리 클레르 우아르는 시민 14만 명의 서명이 담긴 분리반대 청원서를 의회지도자들에게 전달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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