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노대통령 "일본이 말을 잘 안 들어서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무현 대통령(右)이 7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7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나눈 대화에 대한 양측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미 행정부 소식통은 18일 "당시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과 미국, 일본의 군사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취지의 말을 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의)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게이츠 장관의 청와대 방문은 회담을 위해서가 아니며, 한.미.일 군사 공조를 제안받은 일도 없다"고 부인했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이날 서울서 열린 제 39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한 게이츠 장관이 노 대통령을 예방해 '한.미.일 간 군사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말하자 노 대통령은 '(국제 공조에서)중국은 말을 잘 듣는데 일본은 말을 잘 안 듣는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게이츠 장관의 말을 거절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이에 앞서 6, 7일 서울에서 열린 SCM과 한.미 군사위원회(MCM)에서 게이츠 장관과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은 "한국과 일본이 역사적 문제로 서먹서먹한데 이는 역내 안정에 좋지 않다. 이를 위해 미국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며 "한국과 미국, 일본이 해양 수색과 재난 구호(search and rescue) 등 인도주의적 목적을 위한 군사협력을 강화해 역내 안정과 평화에 기여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또 양측은 "역내를 넘어 한.미동맹을 세계적 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공감을 표시했으며, 한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글로벌 파트너십 참여도 계속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 장관은 이 같은 군 차원에서의 협의를 바탕으로 노 대통령에게 같은 취지의 말을 했으나 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불평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자 당혹스러워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일본을 우려한 대목이 과장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동북아의 냉전 구도가 해소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있다. 그중에서도 불안한 게 일본의 국수주의"라며 "일본의 군사 대국화가 중국과 주변국에 군비 경쟁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은 권위주의에서 개방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같은 논란이 제기된 것은 최근 한국 정부가 동북아에서 실시되는 다국적 군사작전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군사적 샌드위치'가 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달 일본 규슈 서쪽 동중국해에서 실시된 미.일.호주 3개국 합동훈련에는 한국이 초대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일본 도쿄만 일대에서 실시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다국적 군사훈련에는 북한 자극을 우려한 한국 측이 불참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 양자 간에는 각각 군사협력을 할 수 있지만 한국과 미국, 일본 3자가 군사협력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이는 인도주의적 목적에 국한하더라도 한국으로선 중국과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