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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상대 청문회] 소리는 요란…실속은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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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는 요란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이틀째를 맞았지만 알맹이가 없다. 잔뜩 기대했던 11일 대검에 대한 청문회마저 흐지부지 끝났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권노갑.안희정.정화삼 등 핵심 증인들이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큰일을 낼 것처럼 별러온 야당 의원들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아 실망만 시켰다.

검찰과 야당이 충돌했다. 11일 대검찰청에서 이틀째 계속된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에서다. 야당은 '편파 수사'를 주장했고, 검찰은 '공정성'을 내세워 방어했다. 국회가 검찰청을 상대로 청문회를 연 것은 이례적이다.

◇"증인 선서 못하겠다"=시작부터 신경전이었다. 송광수 검찰총장이 굳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증인 선서 직전이었다. 그는 "수사와 관련해 증언대에 서는 것은 적절치 않아 선서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문회 증인 자격으론 수사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발이었다. 장내가 잠시 술렁였다.

의외의 발언에 놀란 김기춘 법사위원장은 각 당 간사들을 위원장석으로 급히 불렀다. 논의 끝에 金위원장은 "검찰 수사와 총장의 특수성을 감안, 그렇게 하라"며 宋총장의 요청을 수용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주역인 안대희 중수부장도 검찰 간부 소개가 있은 후 곧바로 청문회장을 떠났다. 몇 차례 국회의 청문회 방침에 마뜩찮은 심기를 드러냈던 그였다. 安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청문회가 의혹 규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재판이나 수사 중인 사람들을 청문회장으로 끌어내는 게 맞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5백2억원 대 0원'논란=야당은 4대 기업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 '5백2억원 대 0원'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를 들어 '편파 수사'임을 부각하려 했다. 공세는 파상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칼끝은 무뎠다. '재탕'주장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은 "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재벌들이 어떻게 한나라당에만 돈을 주고 당선이 확실한 측에는 한푼도 안 줬겠느냐"며 "국민이 믿지 않는 만큼 철저히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김용균 의원도 "한나라당 불법 자금은 조직적인 범죄로, 여당 측은 측근들의 개인 비리로 호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宋총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여야를 막론하고 수사하고 있다"며 "특히 4대 그룹 수사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함승희 의원은 "민주당 경선과 관련, 한화갑 전 대표만 구속하려 하는데 나도 검사를 해봐서 알지만 의지만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동영 열린우리당의 경선자금도 수사하는 것이 맞다"고 다그쳤다. 宋총장은 "수사과정에 비리가 나오면 경선자금이든 무엇이든 다 밝혀 왔다"며 "고발장이 접수돼 있으니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답했다.

宋총장은 "검찰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정치인 사건은 특검에서 수사하면 어떻겠느냐"(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는 질의에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옆집에서 자식을 꿔오기보다 믿고 맡겨 달라"고 말해 참석 의원들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여야도 충돌=청문회 시작 전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청문위원의 자격 문제를 거론해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이종걸 의원은 "국민은 국회의원들을 모두 도둑으로 보는 것 같다. 과연 위원들이 대검 관계자들에게 질문할 자격이 있느냐"며 발언을 계속 이어갔다. 일종의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였다. 김용균 의원은 "저런 철없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느냐"며 반박했고, 김기춘 위원장도 "동료 위원들을 모독하는 발언을 자제하라"고 막았다. 열린우리당은 전날과 같이 실력 저지를 하지 않았지만 김근태 원내대표 등 10여명을 방청석에 배치,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신용호.이가영 기자<nova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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