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급행료 거부한 르완다 군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르완다 키갈리 취재를 마치고 자이르 고마 난민촌까지의 귀환길.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던 취재차량은 국경이 가까워지면서 잦은 검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키갈리로 향할때 부딪쳐 안면이 익은 군인들이라 눈인사와 악수를 나누면서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국경초소에 도착했을 때는 주위가 깜깜해지고 철제 바리케이드는이미 내려진 뒤였다.
소총과 수류탄등으로 무장한 군인 10여명이 차량을 에워쌌다.
취재진 차량임을 밝히고 통과시켜줄 것을 1시간가량 사정했으나받아들여질 기미가 전혀 안보인다.전화등 통신수단이 없는 곳인데다 군인들에 둘러싸여 옴쭉달싹 못하게 되자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할지 난감했다.
뒤늦게 국경초소 책임자가 나타났고 상당히 정중하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그의 자세를 보고 기자는 재차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한국 기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나 밤이 돼 국경폐쇄시간이 지난 이상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다급한 김에 기자는『우리에게는 시간이 돈이다.당신들은 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필요한 것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 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은채 답변했다.『우리에게는 원칙이있다.국경폐쇄시간이 지나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치울 수는 없지 않느냐.더욱이 돈을 받는다는 것은 부패행위(corruption)다.우리 입장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오히려 취재진을 설득했다. 그는 취재팀이 하룻밤 묵을 장소까지 알려주는 친절을 베푼다.그러면서『국경마을에 호텔이 있으니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면 내일 아침 일찍 통과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취재팀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음날 일찍 국경초소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자신의 계급과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마다하던 그는 취재팀을 약속대로 통과시켜주며 자신의 이름을 『피터』라고 알려줬다.
모든 것이 뒤떨어진 줄만 알았던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국경경비책임자인 위관급쯤으로 짐작되는 젊은 장교가 보여준,의연하게 원칙을 지키는 자세는 기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잇따른 사건에서 드러난 국내 공직사회의 부정과 부패가 머리에자연스럽게 대비돼 떠올랐다.피터와 같은 군인이 르완다에 몇이나될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그를 통해 비극의 땅 르완다,더 넓게는 아프리카의 한가닥 희망을 확인한 느낌이었다.
[자이르 고마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