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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공구상 전병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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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학교를 세웁니까. 몇 달 새 땅값 오른 거 보세요. 장사꾼, 아니 투기꾼이지."

서울 청계천 공구상 전병두(59.사진(右))사장은 학교를 짓기 위해 2003년 경기도 김포에 땅을 샀다. 그런데 땅값을 치른 뒤 급격히 오른 가격 때문인지 원주인이 등기이전을 해주지 않았다.

"별 소릴 다 들으면서" 법정 공방 끝에 일이 해결됐고, 2006년 3월 김포외고의 문을 열었다. 전 사장은 이사장이 됐다. 그는 교사.학생의 눈을 피해 일요일 오후에만 학교에 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주인입네 나서는 것이 부끄러웠다."

얼마 전 학교가 세 번째 신입생 선발시험을 치렀다. 경쟁률이 10 대 1이 넘었다. 200억원 넘는 돈이 들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자식한테 모두 물려줄 마음도 없었다. 그는 23, 29세 된 딸 둘과 27세 된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그런데 김포외고 문제 유출사고가 터졌다.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학교에 갈 필요는 없다. 늘 그렇듯, 전 이사장은 자신의 청계천 공구상 '록스 기계'로 출근했다. 그는 면장갑과 기름때 묻은 점퍼를 입고 공구를 정리했다.

중앙일보 11월 15일자에 그를 소개했다. 많은 독자와 네티즌이 전 이사장에게 격려와 성원을 보냈다. "아이를 김포외고에 입학시키려 결정한 이유의 절반은 이분의 건학이념 때문"이라고 밝힌 네티즌 이희진(아이디 gmlwls34)씨는 중앙일보 인터넷 joins.com에 실린 기사에 댓글을 달아 "용기 잃지 않길 바란다.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 전병국(아이디 jbkook)씨는 "이사장이니 관리 책임은 있겠지만 너무 자책하지 말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교육계가 더욱 발전하리라 본다"는 의견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독자는 "중요한 사안에 감정적인 기사로 물타기 한다"고 지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돈만 가지고 아마추어적으로 학교를 관리했다" "외고의 설립 목적을 잘 모르는 사람 같다"는 비판도 있었다.

기자는 그의 '학교 관리'보다 '삶의 태도'를 얘기하고 싶었다. 상당수의 부자들이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기 위해 편법.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돈벌이가 되지 않는 학교를 자기 돈 들여 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청계천 주변 공구상들은 "여름이 되면 러닝셔츠, 겨울이면 진청색 점퍼가 유니폼인 사람"이라며 "오랫동안 봐왔지만 돈을 헤프게 쓰는 걸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어떤 상인은 "구두쇠도 그런 사람이 없지"라며 껄껄 웃었다.

1969년 청계천에 들어온 그는 장돌뱅이부터 시작했다. 안 팔아본 게 없다. 공구상을 열고 공장을 지었다. 그렇게 수백억원을 모았다. 학교를 짓는다고 할 때, 주위에서 말한 '이런 사람'이란 '장돌뱅이에 공돌이고, 장사치'를 의미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은 재능과 노력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런 그가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막대한 돈을 기부한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귀감이다. 버핏과 전 이사장이 돈을 번 방식은 달랐다. '스케일'과 '세련됨'이 상대가 안 된다. 그러나 전 이사장의 돈을 쓰는 태도, 마음가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실한 서민과 중산층의 자녀들이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는 그의 꿈이 꺾이지 않길 바란다.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