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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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주변에 외면적인 여러 요인에 신경을 쓰며 잘 닦여진 성공인으로 행동하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격식에 매달리지 않고 있는 품성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두 가지 타입의 인물을 동양에서는 문(文)과 질(質)로 적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드러내는 경우가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선다면 ‘야함’이요, 형식이 바탕을 이기는 상황이라면 ‘사’라고 할 수 있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두 측면이 잘 어울려야 군자라 할 수 있을 것(文質彬彬, 然後君子)”이라고 했다.

야(野)와 사(史)는 이런 두 가지 타입의 성향이 빚어내는 결과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질은 원래 타고난 그대로의 바탕, 문은 자신이 지니고 태어난 것과는 별도로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쌓이는 외양의 모습이다.

공자는 이 두 가지가 잘 어울려야 훌륭한 사람, 즉 군자가 된다고 본 것이다. 안과 겉모습의 일치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문질빈빈’이라는 말은 결국 인물의 됨됨이를 그린 것으로 후대의 동양 사회에서 사람의 바람직한 인격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문과 질은 사실 공자에 앞서 역(易)의 개념으로 처음 나왔다. 역시 문을 외면적인 형태, 질을 내면적인 속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漢)대 이후 이 두 가지 개념은 사람의 품성론을 넘어 문학 이론으로까지 확산한다. 수식과 형용에 뛰어난 작품을 문, 내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쪽을 질로 표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특히 동양인의 의식 속에서는 바탕에 관한 집착이 더 깊었던 까닭인지 질을 표현하는 말은 나중에 많이 생겨났다. 자질과 품질, 소질과 양질(良質) 등이 이에 뿌리를 두고 발전한 단어들이다.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 이명박 후보는 자질 면에서 심각한 결함을 보여 준다. 아들과 딸을 자신의 건물 관리회사에 직원으로 거짓 등재해 월급을 타게 했다는 사실은 대통령감으로 이 후보에 거는 기대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그와 달리 불거진 BBK 의혹과 건물 차명 보유 혐의 등에 비해 후보의 자질을 더 의심케 하는 행위다.

게임판으로만 정치를 읽는 습관 때문인지 이 문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 후보에게는 다행일지 모른다. 그러나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선진 정치의 수준에서 보면 이는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다. 이 후보가 법을 무시하고 이익에만 몰두하는 바탕의 사람이라면 ‘대통령 이명박’의 후유증을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