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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최후의 ‘댕기머리’ “군 복무도 충을 실천하는 길이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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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리산 청학동 마지막 댕기동자 김덕호씨가 군입대후 첫 휴가를 나왔다. 왼쪽사진은 입대 전 모습. [사진=송봉근 기자]

빡빡깎은 머리와 얼룩무늬 군복에 이등병 계급장의 김덕호(20)씨. 첫 휴가를 나온 평범한 군인 모습이지만 입대 전에는 허리아래까지 늘어뜨린 긴머리에 한복과 고무신 차림이었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지리산 청학동 도인촌 출신인 그는 청학동 마지막 댕기머리 청년이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지난 7월 어릴 때부터 길러 온 머리를 깎았다. 집에서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누나(24)가 그의 머리를 깎을때 온 가족은 울었다. 청학동 청년들이 군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초등학교 조차 다니지 않아 군 면제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김 이병도 고졸자격 검정고시를 치기 전에 신체검사를 받았다면 중졸 학력으로 군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

“서당과 학교 공부를 병행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다”는 그는 동국대 한문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 머리카락이지만 그는 목숨만큼 소중하게 여겨왔다.

어릴적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과 효경(孝經) 등 한학을 공부한 그에게 머리카락 한올 자르는 것은 바로 불효였다. 그는 어릴때부터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몸은 부모로 부터 받은 것이니 훼손하지 말라)글귀를 가슴에 새겨왔다. 매일 새벽 일어나 부모께 문안 올리고, 마을 서당에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무릎꿇고 한문을 즐겁게 공부한 것도 이 글귀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기 위해 일반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와 한학으로 대학에 진학을 할 정도로 꼿꼿했다. 묵계초등학교,청암중학교를 다니면서 방과 후에는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그는 2002년 2월 진주고에 합격했다. 산골을 떠나 지역 명문고에 합격한 기쁨은 예비소집 날 산산히 부서졌다.

아버지 김보곤(50·몽양당 서당 이사장)씨와 함께 교장을 찾아가 머리를 자르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했다. 돌아온 답은 “학교 규칙상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덕호군은 잠을 자지 않고 고민했다. 이 모습을 딱하게 여긴 아버지는 “지금껏 머리 길렀으면 됐다. 이제 머리 자른다고 불효하는 것은 아니니 고등학교에 진학하라”고 권했다.

며칠 고민한 그는 “머리를 잘라 편함에 익숙해지면 정신이 흐트러질 것 같다” 며 아버지 권유를 뿌리쳤다.

그는 댕기머리 때문에 잠 잘 때도 바로 눕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야 하고 아침마다 30여분간 머리 땋아야 했다. 독특한 모습 때문에 행동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청학동 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모두 머리를 잘라야 했다. 청학동 주변의 초·증학교는 마을 풍습을 존중해 댕기 머리를 허용했으나 하동읍이나 진주 등의 고등학교는 이러한 풍습을 이해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교 진학을 포기한 그는 집으로 돌아와 검정고시와 한문공부에 매달렸다. 2003년 6월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시작으로 1년에 두 차례 시험에 차례로 응시,2004년 11월 마침내 1급을 땄다. 어릴 때부터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지만 실력을 공인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자실력이 뛰어난 학생을 뽑는 대학을 겨냥하기 위해서였다.

한자 공부를 마친 그는 대입자격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공부 방법을 몰라 진주시내 검정고시 학원에 두 달간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청학동에서 책과 씨름한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

한문학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그는 “사람은 부모로 인하여 세상에 태어났고 부모의 사랑과 가르침을 통하여 세상 사는 이치를 배운다는 유학의 가르침을 요즘 소홀히 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군 복무도 충(忠)을 실천하는 길이니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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