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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 '竹의 장막' 걷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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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창한 중국의 개혁.개방은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그러나 정치만은 예외였다. 정치적 결정은 언제나 대나무 장막 뒤에서 이뤄져왔다. 그러나 이제 정치마저 '광장'으로 걸어나왔다. 정부 내부 회의를 외국기업 대표가 참관하는가 하면,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정치적 결정을 끌어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CEO들, 와서 보시오"=지난 5일 상하이(上海)시 공상국(工商局)은 연례업무보고회에 한국.미국.일본.영국.프랑스.호주 등 상하이 주재국의 영사들과 10개 외국기업의 대표들을 참석시켰다. 이 자리엔 중국의 국유.민간 기업 대표들도 초대받았다. 중국 정부가 내부 회의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회의 개방은 지난달 20일 공표된 '상하이시정부 정보공개규정'에 따라 이뤄진 조치다. 인민일보는 "참관인들은 상하이시 주요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돌아간 뒤 e-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의견을 개진했다"고 보도했다.

류위팅(劉玉亭) 공상국 부국장은 "시 행정의 투명한 공개를 통해 외국기업이 더욱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상하이시 정부는 ▶가짜상품 단속 강화 방안▶정부.기업.소비자가 함께 운영하는 소비자권익보호위원회 출범 등의 정보를 공개했다.

◇인터넷이 정치 바꾼다=중국 최고의 권부는 베이징(北京)의 중난하이(中南海)다. 호수로 둘러싸인 작은 섬 중난하이에서 중국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모든 정치적 결정이 내려진다. 보통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여지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8천만명에 육박하는 네티즌들이 만만찮은 '정치적 압력단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에서 일어난 'BMW 재판'은 '네티즌 파워'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BMW 재판'은 한 귀부인이 자신의 BMW 승용차에 흠집을 낸 농촌 주부를 차로 치어 죽인 뒤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을 향해서도 몰던 차를 밀어붙여 12명을 부상시킨 사건에 대한 심리다. 끔찍한 범죄행위였지만 현지 1심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판결이 내려진 직후 중국 전역의 네티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네티즌들은 법원을 '범죄집단'이라고 성토하면서 사형선고를 요구했다.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으로 전국의 인터넷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급기야 최고 사법.감찰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나서 1심 판결을 무효화한 뒤 직접 심리에 들어갔다. 중앙 기관이 일개 지방 사건에 직접 관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인터넷이 정치를 바꾼 사례가 비단 BMW 재판만은 아니다. 지난해 주하이(珠海)에서 발생한 일본인 관광객 집단 매춘 사건, 전 하얼빈시 부시장 주성원(朱勝文)의 교도소 내 의문사 사건, 선양(瀋陽) 폭력조직 두목의 집행유예 사건 등에서도 네티즌들의 목소리는 진실을 들춰내는 힘을 발휘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정용환 기자.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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