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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들 'IT한국'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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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 대표적인 반도체 제조업체인 Z사는 최근 가슴 철렁한 일을 당했다. 4천7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첨단 반도체 핵심기술이 통째로 유출될 뻔한 것이다.

이 회사의 책임연구원 A씨는 Z사의 모든 반도체 공정기술을 망라한 방대한 양의 핵심 자료를 빼내 집에 보관해오다가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지난달 적발됐다. 경쟁사로 넘어갔다면 6조4천여억원의 피해를 볼 뻔했다.

국가정보원은 "1998년부터 지난달까지 해외에 유출되기 직전 적발된 산업 스파이 사건은 모두 41건이며, 이를 사전에 적발해 업계의 피해를 막은 금액(피해 예방액)이 31조원(업계 추산)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10일 밝혔다.

피해 예방액의 규모도 98년 1조3천9백억원이던 것이 지난해엔 13조9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산업 스파이들이 파급 효과가 큰 대형.첨단 기술을 집중적으로 노린다는 얘기다.

또 중국(14건)과 대만(8건)의 업체들이 이 같은 기술 유출을 시도한 사례가 많았다. 두 나라를 합치면 전체 건수의 54%에 달한다.

기술 유출 방법도 점점 지능화하는 추세다. 기술 컨설팅을 해준다며 접근해 기술을 빼내는 경우도 등장했다. 설계 프로그램 회사인 M사 한국지사는 최근 국내 전자.기계 회사와 기술 컨설팅 계약을 한 뒤 한국 기업의 기술 자료를 빼내 자사 인터넷 영업망에 공개했다.

또 합작회사를 설립할 능력도 없으면서 기술을 빼가기 위해 위장으로 합작회사 설립을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국정원 측은 밝혔다.

기술 유출 사례는 휴대전화.액정화면(LCD).벽걸이용 TV화면(PDP) 등 한국이 세계 1등 상품을 많이 갖고 있는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41건 중 31건(75%)이 이 분야였다.

전체 41건 중 전.현직 직원에 의한 기술 유출이 35건(85%)을 차지했다. "본인이 개발한 기술은 본인 소유라는 생각으로 개발 기술을 유출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라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핵심 연구원과 임원에 대한 상시적인 보안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 연구 성과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 금전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편 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기업연구소를 가진 기업 3백94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기업들의 15%가 산업 기밀 유출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안관리 규정을 두고 산업 기밀을 관리하고 있는 업체는 중소기업의 28.9%, 벤처기업의 33.3%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이에 따라 '산업 스파이 식별 요령'이라는 책을 발간, 기밀 유출 방지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다. 또 주로 대기업을 대상으로 했던 보안 교육을 첨단 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산업 기밀 유출로 의심되는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엔 국정원 홈페이지(www.nis.go.kr)의 '사이버 산업 기밀 보호상담소'나 전화로 국번없이 111로 상담하면 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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