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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민자당 도봉乙 조직 정태윤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태윤(鄭泰允)씨.
최근 민자당에 입당하며『과거 급진적 방법론에 일시적이나마 경도된 적이 있었으나 세계사와 한국사의 흐름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
또 함께 입당한 전 민중당 대표 이우재(李佑宰)씨도 당신처럼솔직하게 사과하지는 않았지만『진보정치의 개념과 내용은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사실상 자신의 과거가 잘못되었음을 고백했습니다.그런데 이런 식의 갑작스런 변신과 이 변신에 대한 사과성 변명에 대해 본인은 이젠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지난해 당신 동료였던 김문수(金文洙)씨가 민자당에 입당하면서 같은 식의 변명을 이미 늘어놓았기에 아마 면역이 되어서인 것같습니다.
그렇지만 김문수씨가 민자당에 입당할 때에 비해 이번에는 실망이 매우 컸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실 지난해만하더라도 재야 세력 내에 한사람 정도의 돌연변이가 있구나 하고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그런데 한해가 지나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고, 게다가 전 민중당의 핵심 간부였던 당신의 정치적변신을 접하고서는 이것은 뭔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 곰곰 따져 봅시다.
10여년 전 당신이 「동쪽이 진리요」라고 주장할 때 대부분의국민은 「서쪽이 진리요」라고 말했습니다.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당신이 서쪽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그리고 이제는 서쪽에 진리가 있다고 판단하는 정당에 입당하면서 「본인이 과거 한때 잘못 생각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식으로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간단한 사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입니까.
당신의 잘못된 생각을 현실에 관철시키기 위해 학생들에게 화염병을 던지게 하고 또 진리추구를 위해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고,도서관에서 밤을 새운 학생들에 대해「현실도피주의 자」「나약한지식인」으로 매도까지 하지 않았습니까.당시 이런 비난을 받았던지식인과 면학에 열중한 학생들에 대해서 당신의 이번 사과는 너무나 값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결코「미안합니다」라는 말한마디로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동쪽이 진리다」는 식의 책임없는 비판을 마구 쏟아낼 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이때 대학가의 학생운동은「민민투(民民鬪)」니,「자민투(自民鬪)」니 하여 일반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극단적인 이념투쟁을 전개했으며, 오늘날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고 있는 주사파(主思派)도 당시의 결과물로 생각합니다.이들 운동을 배후에서 지지하고 격려하고,또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 아닙니까.
본인은 바로 이때부터 학교에 몸 담았는데 당시의 대학은 이미교육의 장으로서 더이상 기능하지 못했습니다.「민중운동 지상주의」이데올로기가 대부분 학생들의 절대적 행동기준이 되어 학업보다는 운동이 보다 중요한 가치였습니다.운동을 위해 서는 수업에 결석해도 좋고,심지어 졸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조차 있었습니다.이유는「제도권 대학」의 졸업장은 필요없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학생들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나무라는 선생을 대자보의 주인공으로 삼아 이들을 어용교수로 몰아붙인 것도 결코 드문 사례가 아닙니다.마침내 학교내에「해방구」를 설치하여이곳을 자신들의 자치지역으로 선포하고,나무라는 교수를 폭행하기조차 했습니다.
재야세력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도덕적 정당성을 형성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기본적 가치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본인은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민주화 운동을 방해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은 민주화 운동을 실천하 는데 있어서 결코 도덕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볼때 당신과 같은 민중론자(民衆論者)들이 기존 세력에대해 자주 요구하는 역사적 책임의 대상에 바로 당신들도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아마 그 역사적 책임은 집권여당의 지구당 위원장으로서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입산수 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본인이 변신한 많은 사람중에서 당신을 선택한 것은 공교롭게 나이가 비슷하고,또 다른 변신자에 비해 솔직히 자신의과거를 고백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입니다.어두웠던 유신시절에 함께 대학을 다녔고,또 그후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사람의 고언(苦言)이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당신의 정치적 앞날에 행운이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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