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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구글 협공에 MS ‘휘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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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21면

“빌! 우리는 긴 여정을 거쳐 여기에 도착했네. 하지만 가야 할 길이 더 멀어.”

글로벌 IT 삼국지

지난해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연설 도중 이런 말을 슬쩍 던졌다. 참석자들은 그의 말을 ‘잡스가 1997년 애플 경영권을 다시 장악한 이후 빌 게이츠와 맺은 협력 관계를 앞으로도 유지하자’는 제안으로 이해했다고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보도했다.
잡스는 직설적이지만, 은유법도 곧잘 쓰는 인물. 요즘 IT 전문가들은 잡스의 말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당신이 이겼지만 앞으로는 승부가 달라질 것임’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나오는 데는 최근 글로벌 IT 업계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IT 삼국시대가 열렸다=전문가들은 2007년 현재 글로벌 IT 업계는 MS 독주 시대가 저물고 애플과 구글이 가세한 ‘삼국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한다. MS가 95년부터 2004년까지 IT 제왕으로 군림했으나, 애플이 부활하고 구글이 새로 떠오르며 세력이 재편됐다는 것이다.

요즘 세 회사는 모바일 환경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모바일 환경이란 휴대전화나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로 인터넷 접속 등 컴퓨팅과 음성통화·게임 등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운영체계와 PC를 중심으로 한 재래 인터넷 환경에 이은 차세대 IT 전장(戰場)이라 불린다.

과거 PC환경과 마찬가지로 운영체계 시장을 장악한 회사가 모바일 환경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애플은 지난 6월 아이폰이라는 독자 단말기를 내놓으면서 자체 운영체계를 탑재했다. 자사 컴퓨터와 운영체계를 묶어 팔던 기존 전략을 그대로 모바일 환경에도 이어가는 양상이다.

구글은 지난주 단말기와 반도체·이동통신 등 분야의 33개 업체를 끌어들여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를 맺었다. 단말기는 제휴 회사들이 공급하는 대신 구글이 개발 중인 모바일 운영체계 안드로이드를 쓰도록 하는 전략이다.

특히 구글은 MS가 지난 2월 이후 ‘윈도 모바일6.0’이란 운영체계를 유료로 팔고 있는데 맞서,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내놓을 예정이다. 공짜를 미끼로 글로벌 유저들을 장악한 뒤 또 다른 강점인 인터넷 광고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심산이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일까?

시장은 암시한다=주가에는 기업의 가치뿐 아니라 미래 성장 전망 등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다고들 한다. 이 말대로라면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MS·애플·구글이 벌이고 있는 IT 삼국대전의 결과를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세 회사의 주가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발행 주식수와 액면분할 여부 등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일정 기간 주가 상승률을 비교해보는 게 좋다. 2001년 1월 이후 지난 주말까지 MS 주가는 40% 정도 상승했다. 그 기간 동안 MS가 상장돼 있는 나스닥시장 전체는 20% 정도 올랐다. 이른바 마켓 비팅(market beating·시장 평균 수익 초과)을 한 셈이다. 어떤 투자자가 MS 주식을 그 기간 동안 보유했다면 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익률이 올렸다고 기뻐했을 법하다.

과연 그럴까? 애플을 등장시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플의 주가가 2001년 이후 지난주 말까지 2000%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4년 8월 19일 기업공개(IPO) 이후 무대에 등장한 구글의 주가는 500% 이상 올랐다(그래프 참조). 물론 시가총액은 MS가 단연 크다. 지난주 말 기준 3250억 달러다. 애플과 구글은 각각 1500억 달러와 216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IT 애널리스트들은 “MS의 최전성기인 1995~2000년, 이 회사의 주가 상승률은 1200%였던 반면 애플은 150% 정도였다”며 “최근 MS 주가 상승률이 애플이나 구글에 한참 뒤진 것은 지금까지의 사건과 미래 전망이 동시에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뛰는 애플·구글, 걷는 MS=주가에 반영된 ‘지금까지의 사건’은 무엇일까.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내부 권력투쟁에 밀려나 85년 회사를 떠났다가 97년 다시 복귀했다. 감성적 디자인을 강조하며 애플 개조작업을 벌였다. 2005년까지 진행된 이 작업은 제2의 창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음악재생기인 아이팟 등 소비자 친화적인 종합 디지털기기를 생산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올 1월에 회사 이름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로 바꾼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애플 변신의 화룡점정이 바로 휴대전화인 아이폰 출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구글은 2004년 8월 19일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이후 새 영역 진출을 선언하고 인터넷 광고회사 등을 줄줄이 인수했다. 2005년 7월 모바일 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2006년 10월에는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를 사들였다. 그뿐 아니라 구글은 IT 최고 인재들을 대거 흡수하고 있다.

반면 MS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초 내놓은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비스타 판매가 지지부진하다. 미국 최대 컴퓨터 생산업체인 델이 윈도 비스타 대신 리눅스를 탑재한 컴퓨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MS는 인터넷 광고회사 더블클릭 등을 인수합병(M&A)하려 했으나 구글에 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또 지난 9일에는 스튜어트 스콧 부회장이 사규위반으로 해고됐다.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미국과 함께 IT 양대시장을 형성하는 유럽연합(EU)에서 반독점소송에 졌다. 직후 항소를 포기했기 때문에 MS는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에 운영체계 핵심 기술을 상당 부분 공개해야 할 운명이다. 갈 길이 먼데 발목에는 걸리는 게 참 많은 형국이다.

앞날은=MS의 최고 소프트웨어 개발책임자(CSA)인 레이 오지는 “구글의 성공은 우리의 잠을 깨우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도전에 MS가 본격 응전하겠다는 뜻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차세대 인터넷 광고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인맥사이트 중 하나인 미국 페이스북 지분 인수전에서 구글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다.

미국 IT 칼럼니스트인 에드워드 알브로는 “MS가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 변화에 맞춰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며 “하지만 환경변화는 MS 쪽이 상상하는 것보다 빨리 그리고 거대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MS가 과거처럼 IT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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