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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짜리 캐디는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호 16면

“언니야. 거리 제대로 불러준 거야.”

“넵. 90야드 맞는데요.”

“너~. 내 샌드웨지의 풀샷 거리가 정확히 얼마 나가는지 알아. 딱 90야드야. 그런데 그린을 오버하고 말았잖아!”

“100야드 거리 표시 목을 기준으로 하면…. 죄송합니다.”

“이거, 이 골프장도 형편없구먼. 거리 하나 제대로 맞지 않고 말이야.”

클럽과 거리의 수치가 조금 다를 뿐 골퍼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캐디가 불러준 거리를 놓고 승강이를 했을 법한 대화 내용이다. 아니, 만만한 게 홍어 뭐라고 ‘캐디’는 골퍼들의 ‘화냄’ 대상 1순위다.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화를 내게 된다.

‘골퍼와 캐디의 대화’ 중에서 골퍼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여러분도 짐작할 것이다. 몇 년 전 일로 필자가 한 선배의 초대를 받아 아마추어 한 분과 동반 라운드를 하게 됐는데 그는 파4의 첫 홀부터 캐디 언니를 이런 식으로 쥐어짜면서 플레이했다.

그는 자신을 70대 후반 내지 80대 초반의 주말 골퍼라고 소개하면서 특정한 클럽을 스윙머신처럼 매번 일정한 거리를 날려 보낸다고 ‘단언(斷言)’했다. 샷을 하다 보면 좀 부족할 때도 좀 넘칠 때도 있는 법인데 딱 맞지 않았다며 캐디를 다그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러다가 정말 궁금한 일이 한 가지 생겼다. 그렇게 자신 있게, 그리고 그렇게 정확하게 샌드웨지의 풀샷으로 매번 90야드 거리를 쳐낼 수 있으면서 왜 자신의 공으로부터 핀까지 남은 거리가 90야드보다 짧은 80야드인지, 아니면 90야드보다 좀 더 긴 100야드인지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분의 캐디에 대한 꼬투리 잡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그린의 경사를 놓고 퍼팅 때마다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를 따져 물었다. 상황이 그쯤 흘러가자, 도저히 시끄러워서 공을 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다른 동반자 한 분이 “혹시 저분 전직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까”라고 귀에 대고 소곤거렸을까. 필자는 “뭐, 잠시 캐디를 학생이거나 자기 부인쯤으로 착각했나 보지요”라고 대꾸했다. 이 정도면 동반자에게 아주 크나큰 민폐를 끼치는 셈이다.

물론 100% 맘에 드는 캐디는 없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캐디에게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투어프로들처럼 전문 캐디를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대해야 할 것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트집을 잡아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트집이어야 한다.

라운드 당일 그나마 유일한 조언자인 캐디와 옥신각신하지 않으려면 1~3홀 사이에 캐디의 상황 판단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재빨리 감지하는 것이 좋다. 단순히 클럽을 건네받는 역할에 만족할지, 거리와 퍼팅 라인 등에 대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세 홀의 플레이를 끝마쳤는데도 채를 준비해서 건네주는 클럽의 번호가 일정치 않으면 그날 캐디의 조언은 그냥 참고만 하라. 반면 첫 3홀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클럽별 거리를 체크하고 상황별로 채를 건네주는 캐디라면 분명 베테랑이다. 그의 조언을 믿고 따르면 운(運)이 따를 것이다.

<브리즈번에서> JES·일간스포츠 골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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