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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리스트의 ‘질긴 미련’ 버릴 수 없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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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4면

미국 코넬 대학의 메드멕 교수는 1992년 여름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분석하고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동메달 수상자가 은메달 선수보다 행복해 보였다. 은메달리스트는 불만과 후회의 표정이 역력했다. 그 순간 동메달을 딴 선수는 자칫하면 시상대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안도의 마음이,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 수상자를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설 수 있었는데…’라는 미련이 컸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전문의가 본 이회창 출마의 심리학

이회창 전 총재의 세 번째 대선 출마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 실험이었다. 1997년 39만 표, 2002년 57만표 차이로 석패했던 그에게 만년 2인자의 아쉬움과 여한이 없을 리 없다. 그는 패배 직후 “정치를 떠나고자 하며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선언하고 5년간의 은둔을 시작했다. 이 시간 동안 후학과 국민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며 나름대로 축복받은 인생이었던 지난 시간을 찬찬히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실험 속의 은메달리스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거기에 오노에게 억울하게 메달을 뺏긴 쇼트트랙의 김동성 선수같이 ‘나는 억울하다’는 마음까지 더해졌을 터이니 강한 이성으로 억누르고 시간이 지난다고 정리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그의 인생은 대선 전까지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경기고·서울법대를 나와 최연소 대법관, 감사원장, 총리를 지냈다. 주류이자 양지바른 곳에 평생 서 있었고, 남의 밑에서 명령을 받고 따르는 시간보다 위에 서있는 시간이 길었다. 더 나아가 법관 위의 법관으로 시시비비의 최종결정을 내리고, 정부의 잘못을 가리는 일을 해왔다. 이런 그의 사회 경력은 마음속에서 항상 “나의 결정이 옳다”는 확신을 갖게 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 결정들은 성공적이었으니 더욱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가 두 번의 대선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정치범, 고졸 변호사 출신의 청문회 벼락스타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지 모른다. 한 사람은 법정에 서있는 공간이 확연히 달랐고, 다른 한 사람은 같은 업계에 있을 때에도 격이 다른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미루어 또 한 번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던 그는 이 두 사람에게 연거푸 작은 차이로 져버렸다. ‘열심히 했으니 이제 후회는 없다’는 노력한 패배자의 만족감이 쉽사리 생기기를 기대하기란 애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도대체 왜 진 것이지?’라는 물음에 답을 내릴 수 없었으리라.

미련은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다. 풀지 못한 마음의 끈을 잡고 놓지 못하는 것이다. 이성이 아무리 강한 성벽을 쌓고 있다 해도 이 미련이란 트로이의 목마가 잠입하게 되면 결국 성문을 열고 만다. 이 전 총재의 마음속에서 5년 동안 잠자던 미련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된 계기는 무엇일까. 출마 선언에서 그는 이명박 후보가 ‘불안한 후보’이며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아 정권교체를 실현할 구국의 대의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이유보다 인간의 행동은 경제적 선택이라는 ‘행동경제학’적 해석이 바이러스 활동 재개의 원인을 설명하는 데 좀 더 유효할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확률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다. 이 시기에 그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자신의 후계자도 아니고, 여러 면에서 자신보다 못한 점이 많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숟가락 하나만 걸치면 바로 밥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작은 불씨에 바람을 지폈을 것이다. 손쉬운 승리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 은퇴 번복과 경선 우회에 대한 비난으로 인해 자존심에 흠이 가는 것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강하다면 그동안의 이미지는 언제든지 던져버릴 수 있다. 간단한 셈법이다.

그럼에도 참는 게 낫다는 이성적 억제를 무장해제시킨 강력한 무의식적 동인은 바로 ‘미련’이다. 행동개시를 합리화하는 한 마디는 ‘옳은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자가 옳은 것이다’는 말이다. 대법관과 감사원장 생활 속에 체득한 ‘나의 판단이 옳다’는 자기확신감의 과잉 발산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렇게 그의 눈으로 본다면 그가 가만히 있는 게 도리어 이상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은 이명박 후보도, 관심에서 벗어난 군소후보들도 아닌 바로 국민들이다. 우리는 불행히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존경할 만한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이가 마지못해 김구 선생을 들 뿐 현대사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흠집이 나있는 상태다. 두 번의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났던 이회창 전 총재는 그의 행동 여하에 따라 바로 국민들이 존경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그러나 그도 상식적인 논리로 욕망을 실현하는 ‘보통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밝히고 말았다.

신뢰(reliability)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안정감 속에 생긴다. 일관성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안정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그가 잘 안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역시 믿을 사람이 없다는 실망감이 컸던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욕을 먹더라도 이길 확률이 있는 게임에 참여해 예전의 미련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의 심리상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그가 설사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지도자로 여길 사람이 얼마나 될지…. 국민이 원하는 안정은 보수적 경향이 아니라 룰과 약속을 지키는 일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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