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순례>17.흥보가中 박타는 대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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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박동진명창의 판소리는 쉽고 재미있어 좋다.그 중에서도 삶의 리얼리티가 어느 판소리보다 실감나게 표현된『흥보가』를 부를 때진가를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의 소리는 오랜 공력으로 다듬어져 자연스럽고,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소리로 표출하는 명인적 기량또한 넉넉하기만 하다.다른 이들이 그저 덤덤하게 부르는 대목도 해학을 곁들여 국악을 잘 모르는 청중들에게까지 소리 세계의 진진한 맛을 넉 넉하게 전해준다. 명창의 소리가 국악이니 양악이니 하는 머릿속 경계를 잊게 하고 청중들을 자연스럽게 그의 소리 품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지않나 생각될 때가 많다.
나 역시 소리의 계보나「소리목」의 특징까지는 상세히 알지 못하지만 소탈하고 친근한 그 소리에 젖어 듣다보면 고향처럼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이것이 내가 그의 판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다.
판소리의 참맛은 귀명창들의 추임새가 터져나오는 소 리 현장에서듣는 것이 최고일 터이다.특히 걸찍한 입담과 해학 넘치는 박동진명창의 소리 마당은 언제나 웃음과 감동으로 넘쳐나기 때문에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이와함께 박동진명창이 수행고수 주봉신의 북장단에 신명을 실어녹음한『판소리 흥보가』완창CD(SKC 1988년 제작) 역시 음반이라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래준다.
이중에서 『흥보가』의 가장 빛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는「박타는 대목」만도 한시간반 남짓 되는데 가난에 찌들린 흥부 내외가박 세통을 타면서 뜻하지 않게 부자가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펼쳐진다.
가난에 찌들린 흥부 내외가「여러 날을 굶어 고개를 왼쪽으로 쑥 빼고 뱃속에서는 미꾸라지 소리가 쪼르륵 쪼르르륵 나는」상황에서「이 박을 타면 아무것도 나오지 말고 밥 한그릇만 나오기를고대」하며 타는 첫째박에서는 휘모리 빠르기로 꾸 역꾸역 돈과 쌀이 쏟아진다.
이어 굶주림에서 벗어난 흥부 내외가 여유있게 진양조로 타는 둘째박,흥부 아내가 신명을 내어 톱질노래 앞소리를 메기는 셋째박 타는 노래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이 벙그러지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생각해보면『흥보가』의 박타는 노래야말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깨끗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았던 우리 서민들에게 꿈과 웃음을 주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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