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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바람' 커질까 강재섭 긴급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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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사 정(情) 줄 만한 사람이 나온 게죠."

9일 대전에서 만난 40대 지역 언론 기자는 '충청도 사람들은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전 중구 대흥동 번화가에서 만난 박기혁(74)씨는 "5년 전에도 이회창을 찍었는디… 정통보수 후보니께 계속 찍어야지"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엊그제부터 충청도의 닭 소비량이 부쩍 늘었다"는 농담도 했다. 이 후보의 7일 출마 선언 직후 '술자리 정치판'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전일보가 9일 발표한 대전.충청 지역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31.8%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31.3%)와 오차범위 안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권 민심은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2002년엔 노무현 후보를, 1997년엔 김대중 후보를 선택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충청권 판세가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얘기가 많다.

이회창 후보가 대전.충청에서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지역 연고 때문이다. 이 후보는 출생이 황해도 서흥이지만 선영이 충남 예산에 있다. 지역에선 "우리 지역 사람 아닌가,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둘째 이유는 동정심이다. 택시기사 김형태씨는 "두 번이나 아깝게 떨어진 분이자녀…"라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의 정계 은퇴 번복과 대선 3수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많았다. 회사원 김기석(34)씨는 "스스로 자기의 원칙을 깬 사람 아니냐"며 "출마 명분이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관을 지낸 이 전 총재의 대쪽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도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재섭 대표가 9일 대전으로 내려와 긴급 선거대책위 회의를 주재했다.

'창풍(昌風.이회창 바람)'이 불기 전에 잠재우겠다는 전략이다. 이 자리에서 강 대표는 "명분 없는 탈당을 한 '대통령병 환자'"라고 이회창 후보를 비난했다.

강 대표는 또 "이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서야 할 때"라고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박 전 대표만 나서 주면 충청권에서 '이명박 대세론'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 대전 선대위는 김칠환.이재선 전 의원이 공동위원장으로 있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계, 이 위원장은 박근혜계다.

박근혜 전 대표가 분명한 지침을 줘야 그쪽 계열 사람들이 열심히 뛸 것이란 얘기가 지역 정가에 널리 퍼져 있다. 박 전 대표의 인기는 경선 이후 두 달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했다. 대전 선화동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만난 주부 김영애(41)씨는 "이명박.이회창.박근혜씨 가운데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은 박씨"라고 말했다.

대전대 유재일(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박 전 대표의 파괴력에 대해 "지역 연고(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충북 옥천)를 가진 데다 충청도민 사이에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명박 후보가 정권 창출의 교두보인 대전.충청을 얻으려면 박 전 대표와 화해하는 게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대전=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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