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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몸통은 파산인데 깃털에 맡기다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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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8월 브루나이공화국 건설개발 협의차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 도착했을 때 건설부 장관의 영접과 원주민의 환영을 받고 있는 최 회장.

이코노미스트최 회장은 긴 숨을 토했다. 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던 곳은 중국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이 추진하고 있던 한·일 간의 해저터널 공사에도 최 회장이 초청됐다. 2003년 3월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이 ‘일한(日韓) 해저터널’ 구상을 발표했을 때였다.

일본의 해저터널추진위원회는 사가(佐賀)현의 가라쓰(唐津)에서 한국 부산까지 총 연장 230km에 이르는 해저터널을 뚫어 한국이 현재 공사 중인 경의선을 통해 중국 베이징(北京)까지 연결하는 ‘동아시아 철도 하이웨이’를 놓는다는 구상을 발표하면서 거기에 최 회장을 한국 측 대표위원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으로서는 의외였고 놀라운 통보였지만 일본 측은 오래전부터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서 보여준 최 회장의 추진력과 동아의 저력을 주목해 왔다는 얘기였다.

-한·일 간의 해저터널공사 프로젝트라면 정부에 내세우기도 좋은 테마였는데 그것도 중국 프로젝트처럼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겁니까?
“우리 집에 금송아지 100개가 있다고 하면 믿겠지. 100개를 만들어올 수 있다고 하면 DJ정부에서 믿어줬겠소?”

-2003년 3월에 자민당이 발표를 했다면 DJ정부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추진은 훨씬 전부터 해왔던 거예요. 발표를 그때 했지 사실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양국이 의견을 타진했고, 이미 실무적으로 여러가지 논의를 해오다가 DJ정권 때 한국 측도 대표가 있어야 된다고 그랬던 거지요.”

한·일 해저터널 프로젝트는 사실 자민당의 공식 발표 이전부터 한국의 교통개발연구원을 비롯한 양국의 연구기관에서 타당성 검토를 해왔고, 자민당 구상이 나왔을 때는 이미 검토를 마친 뒤였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으로서는 노태우 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 총리, 2000년 9월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 총리,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식 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함께 해저터널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기 때문에 일본 측으로서는 최 회장의 한국 측 대표위원 수락이 자연스러울 것으로 전망했다는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 대표로 초청

“그렇지만 나는 일찍 마음을 접었어요.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물론 해저터널이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아직 공식화되지 않고 있지만 양국이 해저터널로 대마도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 베이징까지 연결하는 대형 프로젝트라면 분명 외교적으로도 주변 국가들을 긴장시킬 사안이고, 거기에 한국 측 대표로 회장님이 초청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관심사가 되기에도 충분했을 텐데 왜 그걸 거절한 겁니까?
“거절한 것까지 뭘 얘기해요. 초청장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초청장을 보내기 전에 일본에서 의사를 타진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내 입장을 설명하고 거절했어요. 그때 내가 재판 중이었고 무엇보다 동아 회생이 급선무라서 해저터널 추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했지요. 그랬는데도 해저터널 공사는 양국의 국가 프로젝트기 때문에 동아사태는 문제가 안 될 거라고 합디다. 자기네들도 동아사건을 알고 있다면서 무거운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모양이두만. 그래도 사양했지. 그런데도 보내왔는데, 그걸 정부에 얘기한들 나를 보내겠소? 내 스스로 포기를 했던 거요.”

-단순히 재판 중이기 때문에 결격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물론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일본으로서야 동아의 시공능력을 아니까 내가 필요하다고 했겠지만 나로서는 시공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의사를 타진해올 때가 DJ정부였단 말이오. 미운털을 뽑겠다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족집게를 갖다 주는 게 낫지 초청장을 내보이면 뭐라고 하겠소? 허허헛. 해저터널 공사도 작은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당장 착공할 수 있는 공사도 아니었고. 물론 내가 수주할 수 있었던 공사만으로도 동아 회생은 충분했기 때문에 (해저공사는)미련을 접고 별로 관심을 안 뒀어요.”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실체가 있는 가정은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시키느냐에 따라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해저터널 공사를 포기했다는 것은 앞으로 국가마다 심해개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고도의 해양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할 수 있다.

“해저공사뿐 아니라 그 많은 공사를 눈앞에 두고도 내가 나선다고만 하면 막았는데 더 무슨 얘기를 하겠어. 동아를 회생시킬 때까지만 경영권을 달라고 했는데 끝내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니 말이지. 그러고서도 채권단이나 정부가 과연 국가 경제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소? 더구나 IMF 시절인데. 동아가 쓰러져가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는 것이 동아만을 생각해서였겠소? 어떤 총수든 붙잡고 얘기를 들어봐요. 재계 10대 그룹까지 키웠을 때는 이미 사욕을 생각하는 단계는 떠나는 거예요. 사욕을 앞세워가지고는 절대 10대 기업으로 키울 수가 없어요. 산업의 시스템이 그렇게 돼있는 거요. 그런데 국가경제와 기업인으로서 명예 외에 내가 뭘 생각했겠어요.”

최 회장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동아를 보면서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겠다고 나섰을 때, 그 뜻이 채권단에 전달되기도 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동아 임직원들도 최 회장의 많은 계획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와 채권단을 만나 다각도로 건의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정부나 채권단은 여전히 냉정했고 진실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아의 몰락과 국부의 손실이었다. 그림자도 없는 정부처럼 누구의 책임인가를 물을 수도 없이 산산조각을 낸 것이다.

문득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고도 평창이 탈락하고 러시아 소치로 결정된 이후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고위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대통령(왼쪽) 초청으로 대통령궁에서 필리핀 개발사업을 논의하고 있는 최 회장.

“IOC 위원들하고 환담하는 자리였는데, 어느 IOC 위원께서 했던 말이 의미심장했어요. 한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외교적으로)취약한 중동·아프리카 국가 수반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업인(최원석 전 회장)도 득표 활동을 못하게 묶어놓고, 우리들의 친구(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도 묶어놓고,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하느냐, 참 이상하지 않으냐.”

매우 함축된 의아심을 표현한 말이었지만 정부의 정치적 판단이 국가적이지도 않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그들은 한국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수북조나 해저터널 외에 교섭했던 프로젝트들이 더 있었습니까? (말이 없기에)이제는 밝혀도 되지 않습니까.
“상대편 쪽에서 교섭이 왔던 것들인데, 필리핀 정부에서도 초청이 와서 라모스 대통령을 직접 만났지요. 필리핀 경제개발에 동아가 참여해 달라고 요청을 하십디다. 구체적인 실무 검토까지 했어요. 브루나이공화국하고도 국토종합개발을 약속했고.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이라는 거대한 섬 북쪽에 브루나이공화국이 있지 않아요? 원시림도 아주 좋지만 자원은 풍부한데 비가 많으니까 관개수로 공사가 돼있지 않아서 국토를 전혀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때가 97년 8월께인데 합의를 해놓고도 동아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추진을 못했지요. 그 후에 내가 정신이 없으니까 그 나라 건설장관이 몇 차례나 우리 중역들한테 연락이 왔다고 그럽디다.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협의를 갖자고 말이지. 근데 그것도 결국 막혔고….”

-수단 정부와 동아건설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발표됐던 건 그 이후가 됩니까?
“그걸 기억해요? 허허. 그건 내가 경영권 없는 회장으로 복귀한 직후에 수단 정부가 즉각 협의를 갖자고 해서 이루어진 거지요. 2003년도니까. 수단은 공사가 컸어요. 거기 공사만 수행했어도 동아는 틀림없이 회복됐을 텐데 말이지.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이미 지난 얘기라고 무시해버리거나 알려지는 걸 꺼려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 나라의 정의가 절대 바로 서지 못해요. 무시해버리는 것은 사실을 덮어버리고 싶거나 확대되는 게 무섭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정당성과 옳은 방향을 얘기하겠소. 회생시킬 수 있는 건설시장이 눈앞에 있는데 왜 기업이 무너져야 하는 거요? 이건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어떤 내용으로도 설명하기가 어려운 거야. 간단히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하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 누가 맡아서 하고 있어요? 건교부가 동아건설 대책회의까지 열어서 대한통운한테 맡으라고 했어요. 명분은 동아하고 컨소시엄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마무리 공사를 대한통운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대한통운이 참여한 것은 수송이 필요해서였지 건설 능력이 있어서였소? 당연히 대한통운은 건설 경험이 없다면서 거부했는데, 그런 결정이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뭘로 설명할 수 있겠소.”

사실상 대한통운은 택배와 물류 전문기업으로 건설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었다. 그럼에도 건교부는 2001년 3월, 종합청사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12.69%의 지분으로 대수로 공사에 참여한 대한통운에 공사를 맡도록 요청했다.

대한통운이 건설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자 건교부는 리비아 현지에 있는 동아건설 인력 7000명과 6500대의 장비를 인수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고용하면 충분히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면서 앞으로 리비아 정부로부터 받게 될 금액이 공사비 3억5000만 달러와 미수금과 유보금을 합친 5억4000만 달러 등 약 9억 달러가 되는 만큼 2차 최종 마무리 공사비를 5억5000만 달러로 잡는다고 해도 결국 신규투자 없이 남는 공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장 동아건설을 배제할 명분부터 상실되는 것인데 의아스럽게도 그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동아 파산 사전 각본 있었다

-동아 대책회의 내용을 알고 계셨군요.
“어처구니없어서 웃었소. 그런 조건이라면 동아건설이 못할 이유가 뭐고 대한통운에 맡길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명분도 설득력도 없는 소리 아니오? 대책회의 내용을 나도 전해 들었지만 얼마나 궁색한 논리냔 말이오. 소가 웃을 논리지. 건교부는 동아건설이 회사 정리절차 폐지 결정으로 사실상 파산에 이르렀기 때문에 대한통운이 맡으라고 압박했다는데, 대한통운은 수송으로 참여했고 더구나 동아그룹의 계열사요. 몸통이 파산에 이르렀다면서 깃털한테 나서라는 거요? 기가 막힐 노릇이야. 그런데다가 2001년 3월에 대책회의를 했다면 건교부가 법원의 결정이 나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는 얘기가 돼요. 동아 파산 선고는 5월에 내려졌거든. 이러니까 동아 파산은 사전 각본대로 갔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요. 만약에 동아의 법정관리가 인가됐으면 어떡할 작정으로 대책회의부터 열고 대한통운이 맡으라고 해요?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 건교부가 법원의 상위부서요?”

-결과적으로는 건교부 방안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허허헛. 지켜보니까 희한하게 모순이 현실로 되더군. 경악할 노릇이야. 건교부 얘기대로 결국 동아는 5월에 파산 선고가 내려졌고 대한통운은 6월에 법정관리를 인가 받아서 법원의 보호를 받는 상황으로 전개됐는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납득시키고 설명하겠어. 설령 건교부가 말을 바꾸어서 그게 아니다, 대한통운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이행의무를 지고 있지 않으냐, 대한통운이 승계를 거부했을 땐 리비아가 동아건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35억 달러를 한국 정부가 떠안게 될까봐서 그것 때문에 대한통운이 맡아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돌려댈 거요?”

-그렇다면 (손해배상을)동아건설이 계속할 땐 정부가 35억 달러를 떠안고 대한통운이 맡으면 떠안지 않는다는 겁니까?
“내 말이 그 말이지! 그래서 거짓말은 계속 거짓말을 낳게 되고 그것도 쌍둥이 거짓말을 낳기 때문에 헷갈린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거라고. 그러고 정부가 대한통운에 맡겼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건이라도 새로 수주한 공사가 있어요? 한 건도 없잖소. 정부 방침이 그처럼 허술했고 창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사실은 리비아가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도 동아건설이 계속 공사를 해달라는 뜻이었고 그걸 리비아 대사가 직접 건교부에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래가지고 건교부 당국자도 리비아가 소송을 낸 건 동아와 계약을 파기하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뒤늦게 기자들 앞에서 얘길 했잖소.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뭐냔 말이오.”

최 회장은 깊은 호흡을 했다. 조목조목 짚어내는 내용들이 마치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가시처럼 지금도 전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이호·객원기자·작가[leeho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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