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인천북구청 세금횡령사건-사건발단.범죄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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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인천시 북구청 세무과직원 세금횡령사건은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엄청난 세금횡령 규모와 상납연결고리등이 속속 드러나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당초 세무과 하위직의 단순한 세금횡령 범죄로 파묻힐뻔했던 사건이 검찰의 수 사확대로 조직적으로 장기간 진행된 구조적인 비리의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급기야 현정부의 「실세」인 최기선(崔箕善)인천시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지금까지 드러난 횡령액은 60여억원.그러나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총체적 횡령규모는 1백50여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어서「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격」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부평경찰서가 북구청 세무과직원들의 비리를 캐기 시작한 것은 세무과 여직원 양인숙(楊寅淑.29.9급)씨가 하위 직급인데도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돈을 펑펑 쓴다는 「첩보」를 입수한 8월중순부터.
내사를 벌이던 경찰은 楊씨가 權모씨(북구부평4동)의 세금을 깎아주는 조건으로 5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잡고 지난 3일 오후4시30분쯤 퇴근하는 楊씨를 불심검문해 승용차를 수색,트렁크 안에 보관중이던 경기은행 부평 지점 출납필고무인 1개,스탬프.도장과 함께 허위로 작성된 金모씨의 등록세필통지서 1장을 압수하고 연행,구속했다.이어 경찰은 楊씨 신문과정에서 세무과직원 최병창(崔秉昶.28.7급)씨와 前세무과평가계장 안영휘(安榮輝.54.93년 6월말 명예퇴임)씨의 범행사실을 확인,이들을 차례로 구속하고 13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91,92년 취득세와 등록세 영수증철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했으나 인력부족등을 이유로 비리의 전모를 캐지않은채 安씨등을 송치,「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비난을자초했다.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를 의식,북구 청으로부터 89년이후 취득세.등록세등 세무서류 일체를 넘겨받아 확대수사를 시작했으며 수사착수 10일만인 22일 새벽 세무과직원 강신효(姜信孝.55.평가계 기능직 9등급)씨의 사돈 이인수(李仁秀.60)씨 집에서 증발됐던 영수증철을 찾 아내는 개가를 올리면서 수사가 급진전하고 있다.
安씨등 전.현직 세무과직원들은 지난 88년12월부터 범행을 시작,91년과 92년에 집중적으로 취득세와 등록세를 착복했다.
이들의 세금횡령수법은 5~6가지이나 그 절차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 특징.다만 상.하 연결고리를 맺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일반 세금횡령사건과 구분된다.
이들은▲세금을 몽땅 착복하거나▲세금액수를 깎아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고▲동료들의 세금을 한푼도 내지않도록 혜택(?)을 주는 비행을 저질러왔다.이들이 가장 애용한 수법은 취득세를 정상적으로 납부하려는 납세자에게 접근,자신들이 내주겠 다며 허위영수증에 납세필도장을 찍어 주고 세금을 은행에 입금시키지 않은채착복하고 구청 납세대장에는 허위영수증을 첨부하는 것.또 은행업무시간이 일정한 것을 악용해 업무시작전이나 마감시간이 지난 시간에 구청을 찾아온 납세자에게 자신들 이 대납해 주겠다며 허위영수증을 발급해주고 구청서류엔 허위영수증을 첨부하고 세금을 삼키기도 했다.
구청직원과 법무사 사무소직원이 짜고 금융기관에서 구청으로 보내는 등록세영수증및 등기소에서 구청에 보내는 영수증과 등기소보관용 영수증을 위조,이를 등기소에 제출해 등기등록을 한뒤 등록세를 횡령하기도 했다.
安씨등은 구청 상급자및 시청 상급자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하고 상급자들의 묵인.비호아래 비리를 자행했다.
安씨는 구청장 이광전(李光田.53.現인천시보사국장)씨와 부구청장 강기병(姜騏秉.60.現인천시정책보좌관)씨에게 1천80만원및 4천8백90만원의 뇌물을 건네주는 방법으로 비리를 눈감아줄수 있도록 배수진을 쳤다.
특히 姜씨에겐 자신의 땅을 싼값에 팔아 4천만원의 시세차액을챙길수 있도록 하는 선심을 베풀기도 했다.
또 구청의 세무업무를 지도.감독하는 시본청 세무과 세정계장 하정현(河正賢.53.現인천시감사1계장)씨에게도 7백만원을 상납,매년 실시되는 정기감사의 그물도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공직생활 20년중 18년간을 북구청 세무과에서 근무한安씨의 위치.비리규모.행정조직성격등을 감안할 때 이들외에 다른시 본청.구청의 전.현직 고위간부들이 安씨를 감싸주거나 비리를묵인해 주면서 거액의 뇌물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있다.
북구청 세무과직원들은 법무사 사무소직원들과 서로 짜고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등록세를 착복,「7대3」또는 「9대1」의 비율로 사이좋게 분배해 왔다.
조광건(趙光健)법무사사무소의 경우 설애자(薛愛子.36.여.구속).김승현(金承賢.31.수배중).고한진(高漢鎭.31.수배중)씨등 3명이 趙씨에게 보증금 6천만원에 월 3백만원씩을 주고 명의를 빌린후 구청직원들과 짜고 등록세 영수증을 위조,세금을 착복했다.
인천시가 7일부터 10일까지 실시한 북구청 감사에서 93년5월~94년7월까지 14개월간 이들이 허위영수증을 만들어 착복한액수만도 6백27건 8억8천91만여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으며K모 법무사사무소 여직원 李선민씨(21.구속) 도 楊씨와 짜고1억원(李씨는 이중 1천만원을 건네받음)을 횡령했다.
「간단한 수법」의 범죄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졌는데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상급기관의 부실한 감사와 구청장등 상급자의 부하직원및 업무권에 대한 지도.감독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선 구청의 경우 인천시로부터 격년제로 정기종합감사를 받거나수시로 지도감사를 받고 있으며 감사원과 내무부도 서로 격년제로인천시에 대한 종합감사(부분감사도 있지만)를 펴왔으나 安씨 범행이 드러난 88년이후 단 한건의 비리도 적발 하지 못했다.
이들은「마피아」같은 조직관리를 통해 철저한 보안유지를 한 것은 물론 미처 검거되지 않은 공범이 증거인멸까지 시도하는등 개개인이 청탁 대가로 뇌물을 받는 일반적인 공무원 범죄와는 전혀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또 서로 입을 맞춘듯 검찰수사를 받으면서도 세금을 빼돌린 규모와 수법등에 대해 거의 함구하는 한편 인천시.구청의 고위공무원 관련 부분에 대해 구속된 前북구청장 李씨등 3명을 제외하곤 한명도 진술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검찰관계자는 이에 대해『이들을 취조하다 보면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가 아니라 수직적인 복종관계로 이루어진 범죄단체를 대하는 느낌』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러나「북구청 이무기」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거의 20년동안 지방세무행정을 주물러 온 安씨와 그 일당에 비해 비리를 파헤쳐야 할 수사기관의 대응방식은 너무나 순진하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경찰이 은행의 고무인을 위조해 세금을 대규모로 횡령했다는 혐의를 잡고도 신병및 증거확보에 실패,6명의 주요 관련자들이 도망치게 한 것은 사건해결을 어렵게 만든 결정적 오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8월 중순부터 내사에 착수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 사건을북구청 세무과 여직원 楊씨의 개인범죄로 단정,주범 安씨의 책상서랍도 한번 뒤지지 못한채 사건을 검찰에 넘겨 증거수집을 어렵게 만든 실수를 저질렀다.
이처럼 경찰이 사건의 방향을 잡지못하고 헤매는 동안 김형수(金炯洙)씨등 공모자들은 이 사건의 증요한 증거가 되는 영수증철을 구청에서 빼돌리는 것은 물론 金씨의 경우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지 거의 20여일이 지난 14일 비자까지 만들 어 미국으로도피할 수 있었다.
〈鄭鐵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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