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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화제>異色추리소설 "로맨틱한 초상"펴낸 李甲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무명의 신인작가가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정신의학적 접근으로풀어낸 이색추리소설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베스트셀러출판사로 독자들의 신뢰를 사고 있는 김영사가 2년에걸쳐 발굴한 신예작가라고 내세워 더욱 눈길을 끌고 있는 이갑재(李甲宰.40)씨가 그 주인공.
원래 시인인 그는 「예술 사이코스릴러」란 색다른 장르를 내세운 장편 『로맨틱한 초상』을 출간,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추리문단에 데뷔했다.
이 작품은 제목이 존 수르만의 재즈발레곡인 것에서 볼 수 있듯 음악적배경속에서 사건이 전개되며 사건해결의 실마리도 오디오기기와 CD가 제공한다.클라리넷과 색소폰이 음울하고 파괴적인 음의 교합을 이루는 이 곡은 작품전개내내 죽음의 분위기를 제공하는 소도구며 등장인물이 거의 모두 오디오狂이어서 오디오팬들에게 공감을 살만한 대화가 많다.
부산에 사는 작가 李씨는 한때 오디오전문점을 운영했을 정도로음악과 오디오에 빠져 있는 매니어.게다가 부산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며 어렸을 때 달리는 트럭에서 뒤로 떨어져뇌진탕을 일으킨 후 「소리를 빛으로 느끼는 공 감각 질병」으로광기(狂氣)를 체험한 특이한 인물이다.
그래서 극도의 망상형 정신질환자인 천재조각가가 연쇄살인범으로등장하는 『로맨틱한 초상』은 다방면에 걸친 그의 경험을 한꺼번에 풀어낸 체험에 근거한 작품이어서 흥미를 더해준다.
『92년 우연히 「로맨틱한 초상」이란 곡을 처음 듣는 순간 전율을 느껴 죽음과 광기의 세계를 문학속에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화가의 길도 저버리고 산중에 묻혀 2년간 작품에 몰두,김영사에 투고한 것이 작가데뷔의 인연이됐다. 미술을 공부할 때 기본적으로 기초인체해부학을 거쳤기 때문에 인체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커다란 어려움이 없었다는 그는 다만 정신의학에 대한 정보는 정신과의사 선배의 조언과 정신의학서에 의존했다고 한다.
작품의 살인마 나철은 어렸을 때 트럭에서 떨어진 후 좌반구 측두엽간질이란 심한 발작증세를 보이는 망상증환자.성서의 요한계시록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그는 여자를 납치,제물로 바치며 데스마스크를 뜨는 등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계속한다.
내연의 애인을 잃은 정신의학박사 곽원장은 나철을 유인해 마취합성을 통해 심리상태를 분석,그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란 심증을 굳히지만 자신의 애인은 또다른 살인자가 죽였음을 깨닫고 그를 풀어주고,결국 죽임을 당한다.범인은 『로맨틱한 초상』이 수록된 CD와 죽은 곽원장의 오디오기기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 수사반장에 의해 사살된다.
李씨의 작품은 살인방법이 극히 잔혹해 요즘 나라를 떠들썩하게하고 있는 지존파사건을 연상시킨다.
李씨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잔혹성이 존재한다.범죄소설을 읽고모방하는 4천만분의 5명보다는 작품을 통해 내재한 악마성을 카타르시스시키는 다수가 있다』며 추리소설의 존재의의를 주장한다.
작품의 분위기가 서구적이고 전개방식,범인의 수법등이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키는 면이 없지 않지만 李씨는우리 추리문단에선 드문 시도를 무리없이 이루어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李 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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