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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인사가 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중앙일보

입력


ⓒ권윤주


ⓒ권윤주


때는 2001년, 많이들 그렇듯 유럽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환상을 가슴 한가득 품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몇 달 동안 무작정 유럽을 쏘다니는 것이 나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 나의 두 발로 딛고 선 유럽의 현실은 나의 꿈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땅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파리의 예술과 낭만에 대해서만 침을 튀겨가며 말하고 최악의 위생상태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던 이들을 꼭 색출하고 말리라 다짐을 하기도 했다. 거리 곳곳에 유기견들의 크고 작은 분비물들이 널려 있는 건 차라리 파리의 애교스런 상징인 듯 했다. 최근에는 말끔해졌다는 소문이 들리지만 불쾌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센 강, 동남아 관광지와 별 다를 바 없이 극심한 바가지와 호객행위를 일삼는 거리의 상점들…. 에펠타워 미니어처는 상점에 전시돼 있으면 몇 십 달러, 좌판에 널브러져 있으면 오 달러였는데, 그나마도 태반이 중국산이었다. 이런 거라면 우리나라에도 널리고 널렸다. 두고두고 이 에펠타워 미니어처가 잊히지 않는 까닭은 오십 달러나 주고 샀기 때문이다. 짠순이의 여행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만한 치욕의 사건이었다. 문화와 예술의 나라라는 타이틀에 너무 방심한 결과다.


ⓒ권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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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관광지를 벗어나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자니, 역시나 ‘프랑스 예찬론’이 터무니없는 낭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해외에 나가면 꼭 확인해 보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교육시스템이다. 그리고 파리의 작은 유치원에서 프랑스만의 강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유치원 교육은 의무교육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로 전액 무료로 이뤄진다. 수업 참관을 허락한 유치원 선생님은 다소 어려운 과정의 수업을 소개해주었다. 선생님이 정신없이 재잘대는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보여준 것은 ‘인사 수업’. 인사법이야 유치원에서 응당 가르쳐야 할 수업과정이었지만 그 교육 내용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길을 걷다가 타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두 명의 꼬마가 서로 마주보고 걸으며 살포시 미소 짓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미소가 말할 수 없이 귀여웠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였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인류학자 페터뒤르에 의하면 총기 소지가 자유롭거나 포크와 나이프처럼 날카로운 기구를 식기로 사용하는 나라일수록 무언의 인사법을 더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서로의 표정을 오해하여 공격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생활 속에서 찰나의 눈인사를 몸에 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 탓일까. 파리 시민들의 인심 좋은 눈인사를 유독 눈여겨보게 되었다. 당시 내가 느낀 프랑스 사람들의 첫인상은 어딘지 모르게 도도한 분위기였는데, 시선이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미소를 짓곤 했다. 길을 걷다 말고 잔뜩 도도해 보이는 파리지앵에게 환한 미소를 받는 일, 까만 머리의 이방인에겐 낯선 경험이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길거리 풍경이 머리를 빠르게 스쳐가도록 만든다.


ⓒ권윤주

프랑스인들에 비해 후덕함에서는 한 수 앞서는 한국인들은 눈인사에 있어서만큼은 경쟁 상대가 없으리만큼 인색하다. 지하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걷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이것이 가볍고 기분 좋은 눈인사로 진화하기 보다는 눈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눈싸움만 되면 그나마 낫다. 그게 말싸움이 되고 몸싸움이 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그런 ‘싸움의 불씨’를 안고 눈인사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쩔 줄 모르게 당황하여 회피하는 사람, 무슨 오해를 하는지 실실 웃는 사람, 불쾌한 표정으로 눈빛이 번뜩이는 사람….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시도는 계속한다. 열에 한 명 꼴은 나의 눈인사에 반갑게 화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변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질 때 피어나는 그 따뜻한 기분은 정말로 느껴본 사람만 안다. 엔돌핀이 스멀스멀 온몸을 타고 흘러 상쾌한 하루를 보내는 데 꽤 요긴하다.
도시의 거리 풍경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조금은 쌀쌀맞다. 당장 뒷산 약수터에만 올라가 보아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분명한데 서로 약수도 권하고 과일도 나눠먹으며 ‘우리 아들이 어쩌고, 우리 딸이 어쩌고’ 하며 얘기꽃을 피우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데, 거리로 내려오기만 하면 서로 찬바람이 쌩~ 분다.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딱딱한 바게트 껍질처럼 변해버린다. 그래서 더욱 산책에 부적합한 거리 풍경으로 굳어져 가는 듯싶기도 하다. 도시의 거리는 그 도시인들의 발걸음을 먹고 산다. 조급하게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가득 찬 거리가 매혹적일 리가 없다.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지 날 선 경계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는지 우리의 두 발은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거리도 웃을 권리가 있다. 거리가 그 권리를 회복할 때 가장 먼저 행복해지는 것은 바로 우리다.

그림 제공 - <파리의 스노우캣>(안그라픽스)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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