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overStory] 멀고도 험한 길 신약 수출 대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신약 개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짧게 걸리는 것이 10년을 넘고, 수천억을 쏟아 붓고도 중간에 접어야 할 때가 있다. 그만큼 위험이 큰 사업이다. 따라서 미국·독일·스위스 등 선진국 매머드 제약사들의 전유물로 통한다. 이럼 험한 일에 LG생명과학이 뛰어들어 또 하나의 개가를 올렸다.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의 오영수 박사가 간질환 치료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11년 전이다. 그는 간에서 나오는 ‘캐스페이즈’라는 효소에 주목했다. 연구 결과 이 효소가 많이 분비되면 간이 나빠져 간경화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쪽으로 신약 개발의 컨셉트를 잡았다. 그로부터 7년이 걸렸다. 2003년 그는 캐스페이즈의 구조를 완벽하게 분석해 내고, 이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물질을 합성해 냈다. 이름은 ‘LB84451’로 붙였다.

동물을 이용한 독성실험에서 이 물질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간질환 치료제 개발팀장을 맡은 박미정 박사는 “간이 손상된 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이 물질을 투여한 경우 예외없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신약으로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LG생명과학은 이 물질을 미국 제약사인 길리아드에 수출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기술을 수출하는 것인데 금액은 2억 달러다. 국내 제약 사상 두 번째로 많은 수출액이다. LG가 초기 기술수출료로 받을 2000만 달러는 국내 업체의 ‘스타팅 로열티’로는 최대 금액이다. 길리아드는 임상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3차 실험을 진행하면서 순차적으로 이 로열티를 지급할 계획이다. 길리아드가 2011년(예정) 약품 판매 이후 벌어들일 돈에 대해서는 별도의 로열티를 주기로 했다. 대신 길리아드는 한국·인도·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이 물질의 상업화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 됐다. LG생명과학은 올 3월 비만치료제를 일본 다케다사에 1억 달러를 받고 수출한 이후 두 번째 쾌거를 올렸다.

세계의 만성 간질환 환자 수는 약 7억 명. 그동안 간염 치료제와 생약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간질환 치료제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LG의 신물질이 신약으로 시판될 경우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의약 전문지들은 2015년 이후 전 세계 간염·간경화 치료제 시장 규모를 35억∼50억 달러로 전망한다.

LG생명과학의 연이은 개가가 국내 제약업계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국내 업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더욱 위기감을 느껴왔다. 국내 신약 개발 역사는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99년 SK케미칼의 ‘선플라주’를 시작으로 ▶대웅제약 EGF외용액(2001년) ▶동화약품 밀리칸주(2001년) ▶중외제약 큐록신정(2001년) ▶LG생명과학 팩티브정(2002년) ▶구주제약 아피톡신주(2003년) ▶CJ 슈도박신주(2003년) ▶종근당 캄토벨주(2003년) ▶유한양행 레바넥스정(2005년) ▶동아제약 자이데나정(2005년)이 그동안 신약으로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 ‘신약 회의론’이 일기도 했다.

국내에서 신약 개발이 활기를 띠려면 약값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이승우 사장은 “수십조원을 연구비로 사용하는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하려면 신약에 대한 대접이 달라져야 한다”면서 “선진국처럼 신약은 아주 비싸게, 복제 약값은 싸게 해야 신약 개발 모티브가 생긴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길리아드=지난해 매출 3조원을 올린 신흥 제약사다. 1987년 바이오벤처 기업으로 출발했다. 조류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판매는 스위스 로슈)’를 개발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 뒤 B형 간염 치료제인 ‘헵세라(판매는 영국의 GSK)’를 개발해 또 대박을 터뜨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