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읽는 입체 … 눈으로 읽는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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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무는 식물이에요. 신선하게 살아있다가 마르면서 썩는 모든 과정을 보여줘요. 조각해 놓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나무는 스스로 변합니다.”

영국 왕립학술원 회원인 데이비드 내시(David Nash·62)는 나무조각가다. 최근 2년간의 작품 40여 점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다.

물기 머금은 나무를 길게 잘라 비뚤비뚤 칼집 낸 조각, 나무를 모닥불에 던져 넣어 새카맣게 태운 조각,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청동으로 나무 느낌을 낸 조각 등이 나왔다. 이 중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은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든 피라미드·구·육면체. 세 가지 도형을 조각한 후 깊게 판 홈을 검게 그을려 빗금을 냈다. 뒤에는 그때 생긴 숯을 이용해 조각품 모양을 그대로 드로잉해 그림자처럼 뒀다.(‘Incised Pyramid, Spher, Cube’, 2000년작·사진)

“자연의 모든 형상은 구·원뿔·원통으로 환원된다는 세잔의 말을 재현한 작품입니다. 몸으로 읽는 입체와 눈으로 읽는 그림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라 만족스럽죠.”

평론가들은 그를 환경·생태조각가라고 부른다. 왜 나무여야 했을까. 정작 본인의 답변은 단순했다.

“처음엔 돈이 문제였죠. 예술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탄생시키는 겁니다. 재료 값이 없어 주변에 널려있는 나무로 작업했습니다.어려서부터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았기 때문에 나무 작업이 편하기도 했고요.” 전시는 26일까지. 02-735-8449.  

글·사진=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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