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비리耐性만 키우는 對症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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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6일 발표된 공직자부조리 근절 대책은 공무원비리 예방과 응징을 위해 동원 가능한 수단이 거의 망라돼 있을 만큼 서슬퍼렇다. 정부발표대로라면 이제 감히 부정과 부패에 눈을 돌릴 공직자는 단 한사람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원창구 직원의 경우 수시로 순환인사를 실시,물(?)이 썩을틈을 주지 않을 태세고,북한의 상호감시제인 이른바「5호담당제」가 무색할 정도로 부서장에 의한 철저한 신상관리가 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인천사건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세무직등 주요 민원직의 경우 상하를 막론하고 전공무원이 보유재산을 등록,수시로재산증감상태가 체크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리가 저질러 질 경우 법정최고형에 범죄를 통해 모은재산까지 몰수될 지 모른다. 말썽많던 계좌추적도 허용할 참이다.
그러나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마련된 부정방지대책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비리가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직접당사자인 공무원중에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또 하나의 대책이 나왔나보다 하는 분위기에 정부의사정의지 자체를 의심하는 눈치까지 감지되는 것이 문제다.
과거 어느때보다도 강도 높게 마련된 처방임에도 마치 그동안 여러차례의 항생제 투여에 길들여진 암세포처럼 도무지 먹혀드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처방의 강도만 높여가는 악순환은 일선공무원을 탓하기에 앞서 정부 스스로 자초한 점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새정부들어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공직사회 개혁작업이 목소리만 크게 냈지 실제로는 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하지 않았다. 개혁에 맞는 뚜렷한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청사진을 제시해가며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던들 지금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텐데 일종의 대증(對症)요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부조리의저항력만 키워 놓은 꼴이 된 셈이다.
이번에 나온 부조리 근절대책만 해도 그렇다.
인천사건이 하나의 구조적인 비리의 정형임에도 일과성의 사건정도로만 안일하게 대처하려다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 한마디 하자 서둘러 대책마련에 나선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자니 내용에 있어서도 가짓수만 많고 강도만 높이려 들었지그같은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어느정도 당사자들에게 예방효과를 낼지등에 대해서는 고민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공무원사회의 현실을 간과한 미봉적인 대증요법은 부조리의 내성만 키워 궁극적으로 더이상 처방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할지 모른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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