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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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한번 아치들에게 밥이 된 성식은 그야말로 악어들에게 피냄새를풍기는 먹이였다.도끼하고 중학교를 같이 다셔서 얼굴을 안다는 것뿐 중학교 때 둘이 친했던 건 아니었다.도끼가 중학교 3학년때 퇴학을 당했다는 것 정도나 성식은 겨우 알 뿐이었다.그런데어느날 길에서 불러세우는 도끼를 아는 척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니까 한 2년 만이었다.도끼가 통수형이라고 부르는 사람과써머즈라고 부르는 여자애하고 셋이었다.도끼는 가출한 지 일 년이 넘는다면서 좀 도와달라고 했다.그게 시초였다.
도끼네는 김포쪽의 비닐 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다.성식은 거기에도 억지로 여러번 끌려갔었다.거기에서 왼쪽 어깨를 담뱃불로 지지면서 무슨 맹서같은 것도 하였다.통수파에서 이탈할 경우에는 등에 칼이 꽂히는 걸 기꺼이 각오한다는 내용이었다 .
하우스에 끌려가면 본드를 강제로 마시거나 아니면 온갖 심부름을 거들어야 했다.심지어 장을 봐다가 밥을 지어 올리기까지 하였다.써머즈라는 여자애는 통수형의 애인인 셈이었는데 가끔은 면도날을 입안에 넣고 씹어서 성식에게 겁을 주는 것 으로 성식을압도하고는 하였다.
언젠가는 통수형이 무슨 일 때문인지 화가 나서 써머즈를 때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성식은 그일 때문에 겁먹기도 하였다.어떤 남자애도 그렇게 심하게 맞거나 때리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도 다음에 보면 써머즈는 히히덕거 리면서 여전히 하우스에 살고 있었다.
한번은 토요일날이었는데 하우스에 잡혀서 자고 간 적이 있었다.하우스에는 허리부분에 각목과 보드지로 엉성하게 엮은 문이 있고,말하자면 그 안쪽이 통수형이 쓰는 별실이었다.밤늦도록 별실에서 통수형과 써머즈가 이상한 소리를 냈는데,일부 러 그러는 것같기도 했다.
그동안 성식이가 새 농구화나 새 티셔츠같은 걸 도끼네에게 빼앗긴 건 다반사였고,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안들어왔다고 아버지에게 얻어터진 일도 여러번이었다.어쨌든 성식이는 몇번인가 도끼네에서 탈출해보려고 마음을 독하게 먹어보기도 했다.
도끼네가 지키는 학교 근처의 길을 피해 이리저리 일부러 돌아가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건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며칠내로 도끼네는 성식을 잡아내고는 하였다.한번은 무조건 칼로 성식의 등을 팍 찍었는데다행히 칼집을 빼지 않은 상태여서 칼날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칼집같은 건 없어 이 새끼야.알았어?』 그렇지만 성식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아버지에게 털어놓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 먹은 것도 벌써 여러번이었다.성식은또 한번 도끼네와의 약속을 어기고 이쪽 길 저쪽 길로 도망다닐때였다.그날은 성미와 함께 집에 가 는 길이었다.학교 근처는 일단 무사히 벗어났다.집 동네에서 버스를 내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었는데 불쑥 써머즈가 튀어나왔다.
이어서 도끼가 나타났고 마지막에 통수형이 등장해서 성식이를 노려봤다.
『고년 참 깜찍하게 생겼네.』 도끼가 다가서는데 성식이가 성미를 막아섰다.성미가 겁먹은 얼굴을 하고 성식이의 등뒤에 숨었다.통수형이란 작자가 징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꼬마야,이리 나와봐.누가 널 잡아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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