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경제칼럼>정부의 文民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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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말은 듣기에 따라 칭찬이 되기도 하고 비판이 되기도 한다.때로는 자신의 평가를 듣고자 충고를 자청하기도 하지만,찬사는 귀에 순하고 충고는 거슬린다.충고를 구한다고 수용자의 사람됨을 고려치 않고 발설하다가는 수난을 겪는다.
생각해 보면 발언자 못지 않게 수용자의 위험 부담도 크다.왜냐하면『찬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면 인품(人品)을 알 수 있다』는 로마의 철인(哲人)세네카의 말처럼 인품과 금도(襟度)의노출 위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충고를 괘씸하 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옹졸한 범부(凡夫)의 자세다.
정부도 개인의 경우와 크게 다름이 없다.지난날 군사권위주의 정부 하에서는「웃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건드리면 괘씸죄라는 죄목(罪目)에 걸려 고생했다고 한다.
오늘날 이른바 문민(文民)정부 하에서도 이 죄목이 여전히 위협적인지 여부가 정부의 문민성(文民性)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출신 성분이 군(軍)장성인가,민간 정치가인가 만을 기준으로 판가름한다면 미국(美國)의 워싱턴정부,프랑스의 드골정부는 모두 군사정부였다.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文民대통령이 다스리는 수많은 국가들 가운데 우리의 지난날 군사정권 보다 경제성장 실적은 물론 정치 운용에 있어서도 열등한 예가 얼마든지 있다.민간 정치인의 집권 그 자체만으로 정부의「문민성」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우리는 지난 30여년간의 군사정부 시대를 마감하고 민간인을 수반(首班)으로 하는 정부를 맞이하게 된 점에 있어 세계를 향하여 국민적 긍지를 느낀다.현 정부 출범 1년반이 경과한이 즈음 우리는 정부의 이른바 문민성이 국민생활 의 여러 측면에서 어떻게 결실되고 있는가를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특히 국민경제 운용에 있어서 정부의 민간주도 지향.규제완화등 내실(內實)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동안 개혁과 사정(司正)이라는 요란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정부들과 달리 획기적으로 돋보이는 변화의 명백한 증거들을아직은 찾아보기 어렵다.지나친 정부 개입의 폐습이 답습되거나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조짐마저 볼 수 있다.
지난날 못지 않게 문민정부하에서도 대기업들이 여전히 정부의 눈길을 의식해 몸을 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언론기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실정법에 명백히 위배된 경우에는 법에 따라 엄정히 징계돼야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법전(法典 )에도 없는괘씸죄에 주눅이 들어 민간부문활동이 위축되는 사례가 없어야 한다. 무한궤도(無限軌道)의 기업활동은 국민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그러나 정부가 제도적으로 마련한 테두리 안의 기업활동의 자유는 보장돼야 국민경제의 경쟁력이 신장될 수 있다.
현 정부는 충고 내지 비판에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최근 한스위스 민간기관의 경쟁력 국제 비교에서 한국(韓國)이 41개 대상 국가중 24위라는 연구결과를 다루는데 있어 언론도,정부도지나쳤다.이 보고서에서 상위권으로 평가된 선진 국의 언론계는 토막기사 정도로 다루었을테지만 우리 언론은 대서특필했고,정부는이 연구의 연구 방법에 이의(異議)를 다는데 열성적이었다.「국제화」「금융」분야를 비롯,주로「정부」관련 부문에서 최하위에 가까운 등급을 받았음을 좋은 충고로 받아들이고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아쉽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의 단적인 예는 최근 며칠간 종합주가지수 1천포인트대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정책당국의 손길에서도 볼 수 있다.정부가 일정 수준의 주가(株價)를 마지노선(線)으로 삼아 억제할 논리 합당한 사유는 없다.
자칫 농어민등 서민들이 대거 투기에 참여할지 모른다는 우려는현재로서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개입 될수록 말아야 근래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을 보노라면 선장(船長)이 누구인지,다른 승무원들이 정위치를 지키고 있는지,다음 기항지(寄港地)가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든다.정부의「문민성」을 살리는 길은 특정 정부는 5년 단임(單任)이지만 한 국 경제는 영구하다는 사실의 뜻을 음미하며 민간부문의 창의력이 마음껏 발휘되도록 정부 규제를 실질적으로 푸는데서 비롯된다.현 정부가 자칫 범할 수 있는 최대 과오는 국민의 정치냉소(政治冷笑)경향을 확산하여 정부의「문민성」가치를 폄( 貶)하게 하는 분위기 조성이다.
〈西江大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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